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인간은 길을 걸으면서도, 길을 잃어버리는 왜소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 인간들이 스스로를 ‘호모 데우스(Homo Deus, 곧 신(神)같은 인간)’라고 자처하지만 자코메티가 이해한 인간은 ‘단지 길을 걸으면서도 비틀거리는 지친 존재’일 뿐입니다. 문득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가 기억에 떠오릅니다. 이 작품에는 오만한 인간들이 눈여겨 읽어야 할 두 개의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 첫 번째 에피소드 - 어느 날 절름발이 여우와 장님 고양이가 피노키오가 갖고 있던 4개의 금화를 빼앗기 위해 접근합니다. 물론 이 둘은 절름발이도, 장님도 아닙니다.
이 둘은 이곳으로부터 2킬로미터만 가면 ‘바보잡기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는 금화 하나를 심으면 2000개의 금화가 열리는 기적의 밭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피노키오를 설득합니다. 갈등하던 피노키오는 이 둘을 따라가고 삼십분 후 기적의 밭에 도착한 피노키오는 들뜬 마음으로 4개의 금화를 밭에 심습니다. 다음 날 금화를 수확하러 달려간 피노키오는 금화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절망합니다. 말 그대로 피노키오는 ‘바보나라’에서 ‘바보’가 된 것입니다.

· 두 번째 에피소드 -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무 인형 피노키오는 요정에 의해 내일이면 사람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기 전날, 친구가 피노키오에게 매력적인 소식을 알려줍니다. 이제 곧 ‘24마리 당나귀’가 이끄는 마차가 도착하는데, 그 마차에 타면 책도 없고 공부도 없고 선생님도 없는 나라, ‘장난감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목요일마다 휴교를 하는데 일주일 중 6일이 목요일이고, 나머지 하루는 일요일이니 1년 내내 방학인 나라였습니다.
마음이 흔들린 피노키오는 결국 친구와 함께 ‘장난감 나라’로 갑니다. 피노키오는 그곳에서 5개월 동안 행복하게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피노키오는 거울을 보고 놀랍니다. 거울에 비친 것은 당나귀였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마부는 피노키오처럼 학교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모집해 온갖 즐거움을 누리게 한 후 당나귀로 변하면 서커스단이나 농부에게 팔았던 것이었습니다. 5개월 전 피노키오가 탔던 마차를 끌던 당나귀들도 얼마 전까지 자신과 같은 어린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피노키오는 두려워서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들은 건 당나귀 울음소리뿐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땀과 수고 없이 일확천금을 벌기 위해 여전히 ‘여우와 고양이’를 따라 ‘바보잡기 나라’로 떠납니다. 자신들이 돌아올 때는 빈손이 될 줄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등한시하고 유희와 쾌락이 범람하는 ‘장난감 나라’로 입국(入國)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한 길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걷다가 결국 피노키오처럼 무너집니다.
혹 그대가 지금 ‘두 나라로 가는 길’에 있다면 속히 그 걸음을 돌이키길 정중히 권합니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사랑이 위독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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