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곶자왈도립공원

‘걷기’를 권장하기 위해 숨어있는 숲을 소개한다. 지면에 소개된 숲을 찾아 힐링을 맛보길 바라며. <편집자 주>

제주도의 곶자왈
사계절의 색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 늘 푸른 숲이 있다. 제주도의 ‘곶자왈’이 그렇다. 제주방언으로 ‘곶’은 숲을 말하며,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을 이룬 어수선하게 된 곳을 말한다.
곶자왈은 용암이 점차 식으면서 굳고 갈라지는 풍화작용을 통해 용암 점성의 높고 낮음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식물이 서식하여 오랜 시간을 지나 숲을 형성한 것이다.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역 주민은 벌목과 숯을 만들기 위해 길을 내었다. 현재는 돌무더기로 덮여 있지만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는 숯굽제라고 하는 숯가마가 많이 있었다. 나무와 숯을 실은 우마가 드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이후에 전기가 보급되자 주민들은 떠나고 오히려 자연 상태가 오랜 기간 잘 보존되어 현재는 생태계의 귀한 보존 지역이 되었다. 그럼에도 개발의 이유로 상당부분이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움도 공존한다.

원시 숲에 가까운
제주에는 많은 곶자왈이 있다. 그중 제주의 서쪽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해 있는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을 찾았다.
저마다 형태적 특성이 있는 테우리길, 한수기길, 빌레길, 오찬이길, 가시낭길로 구성된 5개의 코스가 있다. 원시 숲에 가까운 이곳은 대부분 10여 미터 내외의 나무와 늘어진 덩굴이 많아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 터널 형 숲길이 많다. 길 또한 용암이 굳어서 생긴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한 암석과 돌무더기들이 많아 걷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일부 데크길이 있어 편한 코스도 있다.
코스 중에 15미터 높이의 전망대가 있다. 날이 좋으면 한라산과 제주 서남쪽의 섬들도 볼 수 있고 곶자왈의 숲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탁 트인 제주의 풍경을 만끽하기 좋다.
억척스레 바위와 돌에서 자라는 착생식물, 양치식물, 종가시나무, 개가시나무 외 상록수까지 온갖 푸르름이 참 대견하다. 지면 곳곳에 지하용암동굴과 연결된 ‘숨골’이라는 구멍들이 있다. 이 숨골에서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나와 사시사철 푸른 숲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숲에서 빠른 걸음을 하기란 쉽지 않다. 길이 험해서도 이지만 길 따라 다양한 식물들이 사방에 빼곡하기에 하나하나 눈 마주침을 하다보면 자연히 발걸음이 느려진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들리는 소리도 못지않다. 아마도 숲길을 다니면서 이곳만큼 새소리가 많이 들리고 가까이 들리는 경험은 처음인 듯싶다.
용암암반과 바위틈에서 긴 시간 돌출된 나무의 뿌리가 많이 보인다. 실제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 하는 환경에서는 나무가 뿌리를 땅에 더욱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사람의 근육이 발달하듯 표면에서 세로로 두꺼워진다. 바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핏대선 근육이 마치 어머니의 뼈마디 굵어진 손마디를 보듯 숙연해지기까지 하다.

숲이 정글처럼 우거진 만큼 식물들 간에 공생이던 경쟁이던 소리 없이 긴 시간을 통해 죽고 살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지금의 숲을 이룬다. 어쩌면 순리 안에서의 치열한 평화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시간동안 이곳 곶자왈은 사람과 공생하면서 나무를 내 주었고, 4·3제주항쟁에서는 도피처 역할도 했었다. 지금은 누구든 와서 쉼을 얻는 ‘품’이다.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는 이 숲을, 그리고 모든 곶자왈을 더 이상 개발이라는 이기로 갈아엎어 소멸시키지 않길 바란다.
곶자왈의 치열한 평화가 사람에겐 거저 얻는 치유의 고마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글=김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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