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은 1887년 비테부스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대단치 않은 사람이었고 샤갈 또한 비범한 소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지는 어릴 때부터 가득 차 있었다. 왕립 미술학교를 다니면서 미술에 눈을 뜨게 되었고 바크스트의 미술학교를 거치면서 세잔, 고갱의 작품을 알게 되었다. 27세 때에 ‘폭풍’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굉장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표현주의 운동에 큰 자극을 주었다. 이후에 그는 대단히 바쁜 세월을 보냈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이듬해에 그이 고향 비테부스크 지구의 미술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그곳에 미술 학교를 세웠다. 그 이후 그는 작품 구상과 전시를 위해 여러곳을 여행했다. 베를린, 프랑스, 뉴욕, 팔레스타인, 이집트, 네덜란드, 스페인, 폴란드, 이탈리아. 물론 그러는 사이에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작품을 위해 게으른 시간과 비생산적인 상념의 공간들을 모두 없애 버렸다. 그러나 자기 삶에 열중하고,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고, 인기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그 고향은 그가 태어난 비테부스크가 아니라 그의 아내 벨라였다. 샤갈은 28세에 비테부스크에서 밸라와 결혼하였다. 샤갈은 가급적이면 벨라와 함께 다녔다. 고향을 떠나 베를린에 정착할 대도, 50세가 되어 조국인 러시아를 버리고 프랑스 국적을 얻었을 때도 그의 곁에는 아내와 딸이 있었다. 예술가나 유명인에게 있을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기 위한 별거나 성격 차이로 인한 이혼 같은 것은 그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샤갈은 조구고가 고향은 버렸으나, 그의 아내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있었다.

▲아내 벨라, 비테부스크보다 더 깊은 고향
우리는 샤갈의 아내사랑에 대해 그의 외적인 행동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그가 화가였으니 그의 그림을 볼 수 밖에... 그의 그림 <산책>은 이년 전에 결혼한 벨라를 그가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나타내주는 좋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샤갈은 색상과 구도에서 약간의 고집을 피운 듯하다. 색은 빨강과 초록 두 계통만을 사용했다. 그림을 그려보면 이 두가지의 색이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샤갈은 그렇게 그렸다. 무엇인가 의도가 있어 보인다. 빨간 보자기와 와인 그리고 어슴푸레한 분홍 별장은 붉은색 계통의 벨라와 호흡을 같이하며, 벨라가 그의 사랑과 열정이 머무르는 고향임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벨라를 향한 샤갈의 감정은 항상 빨갛게 달아 있었을까? 그 외 녹색 계통의 자신과 물상은 아내를 향한 사랑의 희망과 단순함을 말해주고 있다. 사랑은 때로는 단순해야지 절절 끓지 않는가. 이 그림은 색상뿐 아니라 구도에서도 문제가 있기도 하고 동화적인 표현이라 어느 동화책의 삽화에서나 사용할 만한 구도이다.
거의 같은 때에 그린 그림 <술잔을 높이 쳐든 이중 초상> 역시 불안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벨라의 어깨에 샤갈이 목말을 타고 있는 그림인데 이 두 사람으로 화면은 두 쪽이 나버렸다. 하지만 어색한 구도라고 누가 말한 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의 구도를 잡았다는데, <산책>을 다시 보자. 샤갈의 손에 단단히 잡힌 벨라는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간다. 그 허공은 사랑의 공간이요, 자유의 공간인 것이다. 벨라를 향한 샤갈의 배려는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런 둘 사이에 갑작스러운 이별이 온다. 샤갈은 나치가 프랑스를 점련하는 동안 미국으로 피난했는데 그는 거기서 벨라를 잃었다. 그때 샤갈의 나이 50세. 29년 동안 바쁜 삶과 격랑의 역사 속에서도 한결같이 사랑했던 벨라를... 그의 작품과 삶의 이유였던 아내가 죽은 것이다.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 <그녀의 주변>이다. 이 그림에서 샤갈은 마을과 아내의 얼굴을 나란히 높음으로 아내가 그의 작품과 마음의 고향이었음을 말해준다. 샤갈은 아내와 고향과 딸과 결혼식 때 모습을 창백한 얼굴로 바라본다. 정말 그에게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슴 터지게 사랑하고 싶은 것들이었는데... 창백한 얼굴에는 울음보다 깊은 슬픔과 절망이 숨죽이며 숨어 있다.

▲성서의 세계, 영원한 고향
샤갈은 1950년대 이후부터 성경의 세계를 많이 그리기 시작했다. 1955년에는 <성서의 사자> 연작에 착수해서 1966년에 완성하였다. 그의 손에 의해 여러 성경이 스쳐갔다. 창세기, 출애굽기, 룻기, 사무엘, 에스더, 아가, 요나... 샤갈이 성서의 이야기들을 진정한 신앙심으로 그렸을까? 프랑스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를는 “마르크 샤갈, 그가 성서를 읽는다. 그러면 그의 독서는 곧 바로 한 줄기의 빛이 된다. 그의 화필 그의 연필 아래서 성서는 한 권의 그림책이 되고 한 권의 초상화집이 된다. 그리하여 인류의 가장 위대한 한 가족의 초상이 모아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가스통은 샤갈을 통해 성경이 더욱 빛을 발하고 그 때문에 자신도 그의 작품으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실토하였다. 굳이 가스통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성서에 관련된 그의 여러 작품을 본다면 그가 영원한 고향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사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인 <홍해횡단>을 보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는 엄청난 사건을 그에 걸맞게 대단한 구성으로 그렷다. 홍해 위쪽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사히 건너가고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이스라엘을 숨턱까지 쫓던 이집트 군대가 뒤덮이는 바닷물에 덮여 죽어가고 있다. 이 사건 이후로 약속의 백성들은 그들의 영원한 고향인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이다. 그들의 길을 하나님의 사자가 인도하고 보호해 주고 있다. 그들이 가고 있는 길 위쪽 오른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다. 홍해 사건에서 십자가를 보라고 한 것일까? 출애굽사건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구원의 예표라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십자가를 통해서만 진정 영원한 고향인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본 것일까?
아내에게 안식과 기쁨의 고향을 두었던 샤갈. 그는 아내를 잃고 진정한 고향을 갖지 못해 방황했을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진정한 안식과 평안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을까, 나는 무엇을 새롭게 다시 찾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들. 그러던 터에 <성서의 사자> 연작을 작업하면서 보다 직접적으로 성경의 가르침과 역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새롭고도 영원한 고향을 보았던 것은 아닌지... 아내라는 고향은 감미로우면서도 의미 있었으나 영원한 고향이 아니었음을 60이 넘어선 나이에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은 생애를 그 진정한 고향을 표현하는 데 소진했을지도...

최형철 목사
원주 바른길교회, 목사이지만 수채화를 그리고 글도 쓴다. 목사이기 때문에 목회를 하는 게 아니듯, 그림도 글도 모두 그의 삶이고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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