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권혜영 의료선교사 이야기

중앙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독신으로 20년 동안 사역하며 ‘온두라스의 서서평’(서서평 선교사는 독일 출신의 간호사 선교사로 전남 광주 중심으로 사역했다, 1880-1934)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권혜영 선교사는 1996년부터 20년간 중남미 온두라스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사역 및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엄마선교사로 충성을 다했다.

성매매 여성 위해 학교 시작
간호사 선교사인 그녀는 10개 마을을 다니며 기초 보건교육 지도자들을 세우고, 영양 불균형인 아이들을 도우며 허리케인 ‘미치’로 전국이 초토화 됐을 땐 6개월간 의료팀과 함께 전력을 기울였다.
또 1999년부터는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성매매 여성들을 위해 밤거리 전도와 재활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성매매 여성들의 가정을 방문하다보니 그 안에 방치된 이들을 위해 학교 ‘여리고센터’를 시작하게 되었고, 많은 여성들이 훈련 받고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중 몇몇 여성들은 성매매를 하면서 약에 중독되어 자신의 아이들을 돌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한 소녀의 구출 요청을 계기로 아이들을 위한 센터도 시작하게 되었다.

엄마가 되어줄게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 사랑 받지 못하고 성적 학대와 마약, 거리 생활에 지친 아이들을 데려오셨습니다. 고슴도치처럼 성질을 부리고 어른들을 불신하며 자신의 마음에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아이들에게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엄마’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물었지요. 엄마가 되어줘도 되겠느냐고.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들에겐 유년기가 없었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쓰레기를 수거하며 돈을 버느라 어깨와 등에 근육이 빼곡한 6살짜리 노에, 조직폭력배들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하며 여자아이 취급을 당해 자신이 여자인 줄 착각하는 7살 다니엘, 백혈병으로 엄마가 죽고 마약중독 아버지에게 7살부터 여자로 취급당하며 사산아까지 낳은 11살 킴벌리,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당하고 엄마에게서 쫓겨난 11살 레슬리…. 아이들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다.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경험한 아이들에겐 소망이 없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가 아이답게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3년간 꾸준히 사랑과 말씀을 먹은 아이들은 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구걸하는 다른 아이에게 옷을 벗어주고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자신의 간증을 나누며 사랑을 잃고 소망을 잃은 사람들의 굳은 마음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사랑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물론 매일 아이들은 자신의 육체와 싸워야 했다. 너무 일찍 알아버린 성적 욕구 등의 문제를 이겨내기 위해서 새벽부터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 바쁜 하루를 지내야 했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동심을 회복시켜 주시도록 매일 간구하는데 어느 날 6살 헤네시스의 천진한 말이 권 선교사를 감동시켰다.
“엄마, 이렇게 비가 오는데 하나님은 어떡해? 다 젖으셨겠다.”
아하! 드디어 아이다운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 하나님은 비를 만드셔서 뿌려주시는 분이라 손만 젖으셨을걸.”
얼굴이 밝아지며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로 인해 속상하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아이들의 변화를 제게 보여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의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앞으로 ‘되어질’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에 합당하게 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잘 자라나 지금은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되었습니다. 물론 모두 자신들의 꿈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온 권 선교사에게 얼마 전 한 아이가 메신저로 연락을 해왔다.
“엄마~ 저희는 잘 있어요. 걱정 마세요. 난 부모님의 전철을 밟지 않을 거예요. 교회도 잘 다니고 있어요.”

심재두
내과 전문의이자 선교사로 알바니아에서 교회 개척과 의료 사역을 하였으며, 현재 한인 의료 선교사 네트워킹사역을 하며 의료 선교 관심자와 헌신자들을 모으는 7000네트워크운동(www.7000m.org)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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