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듣는 시간>, 정은 지음, 사계절, 2018년, 180쪽

뒤표지 추천사에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관념까지도 완전히 깨 버린 탁월한 작품이다’라고 소개하지만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나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귀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병원에서는 이를 ‘이명’이라고 불렀다). 귀에서 소리가 난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귀가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도 같다.
어쨌거나 귀에서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역으로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이 느끼는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리에 좀 더 예민한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세상도 궁금해졌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라고? 그래,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장애도 남이 갖고 있지 못한 또 하나의 능력’이라고 말하며 장애를 바라보는 타인의 어설픈 동정을 멋지게 거절하는 이 책의 주인공이 취하는 자세처럼, 나의 귀는 소리를 낼 수 있다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고 쿨하게 반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정체불명의 이 증상이 내 삶을 우울하게 만든다거나 내 일상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으면 했다. 역설적으로 겨우 이 정도 몸의 변화에도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나를 돌아보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게 어떤 것인 줄을 이제야 알게 된 것도 같았다.

이 책에서 청각장애인 수지와 시각장애인 한민은 2인조 밴드를 결성한다. 수지는 가사를 썼고, 한민은 곡을 만들었다.
“옛날에 어떤 철학자는 별마다 내는 소리가 다르다고 생각했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밤하늘이 악보로 보였겠지. 소리는 결국 주파수고 별들은 주파수를 가지고 있으니까 허무맹랑한 생각은 아닌 것 같아.”
그래서 만든 그들의 밴드 이름은 ‘코스모스 사운드트랙(cosmos soundtrack : 우주 음악)’. 별의 노래를 찾는다.
“들리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지. 지구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못 듣는 건지도 몰라.”
별들이 자신만의 소리를 내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람도 고유의 음을 내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내가 감지할 수 없다고 해도 내 몸은 분명히 듣고 있고, 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내게 들리는 이 낯선 소리는 지구가 내는 소리이려나, 내 몸이 내는 소리이려나,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내는 소리이려나?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관한 태도의 문제이다. 그래야만 동네 산책을 하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고, 듣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명은 한자로 ‘耳鳴’ 즉 ‘귀에서 새가 운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텐데, 산책길에서 새가 우는 소리는 때때로 새가 노래하는 소리로도 들린다.
말년에 빈센트 반 고흐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귀가 윙윙거리니까 자신의 귀를 잘랐다고 하는데, 여기에 어지럼증까지 더해진 고흐의 산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소용돌이치는 붓질만큼이나 불안정했지만 ‘별이 빛나는 밤’ 같은 작품을 보면 고흐는 예술적인 정신력으로 놀랍도록 황홀한 그림을 그려냈다.
더 많은 소리를 듣게 되고 나서 나의 일상에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예전부터 호기심을 가졌던 발레를 배우고 있다(정확히는 발레를 배우기 위해서 몸을 만드는 단계지만 언젠가는 발레를 제대로 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나 빼고는 수강생 모두가 여자들인 수업에서 나는 불균형한 자율신경을 바로잡으려고 한다는 거창한 핑계를 대며 다니지만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이 시간이 기분 좋다.
또 다른 변화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평소처럼 나를 대하며 배려하는 아내의 숨소리 그리고 가슴 뛰는 소리도 가만히 살펴 듣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나의 모습은 전적으로 ‘눈을 감고 귀를 닫아야만 들을 수 있어요. 눈을 감고 귀를 닫아요. 그래야 들을 수 있어요’라고 노래하며 나를 위로하는 책 <산책을 듣는 시간>에서 내가 배운 것들이다.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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