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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그림 에세이 함께 펴…7개월간 글쓰기 작업
노경실 작가와 구세군서대문사랑방 가족
[227호] 2018년 12월 01일 (토) 이경남 기자 penshock@hotmail.com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
-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중에서


지난 4월부터 매주 화요일 어스름 저녁이 되면 노숙인 자활쉼터인 구세군서대문사랑방(원장 김도진) 한 강의실에 노숙인들이 모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 부지런히 저녁을 먹고 앉아 있으면 몸이 노곤해 잠이 올 수도 있는데, 피곤을 삼키고 그 자리를 지킨다.
노경실 작가(동화작가)가 던지는 주제를 가지고 자기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쓰고, 그린 지 모두 일곱 달. 글 한 번 제대로 못 썼던 이들이,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자기 이야기 한 번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했던 이들이 봇물 터지듯 자기 이야기를 내놓았다.
그랬구나, 그렇게 아픈 일이 있었구나. 5살 때 새어머니가 시장에 데리고 가 그의 손을 놓을 때 그는 알았다고 한다. 새어머니가 자신을 버린 것을. 그래서 꼼짝하지 않고 거기에 서 있었다고. 먹먹했던 과거들이 눈물이 되어, 글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노경실 작가와 구세군서대문사랑방 식구들이 함께 나눈 그 이야기들 중 12명의 이야기가 최근 ‘홈리스 그림 에세이’ <나의 인생책>(비매품)으로 엮어져 나왔다. ‘글·그림 / 구세군서대문사랑방 가족’ 이름으로. 지난 11월에는 서울시민청에서 전시회와 북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내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들 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니 외롭기만 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알코올중독에 걸린 아버지로 우리 가정은 지옥 속에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을 엉뚱한 데 쏟았다.’

‘초등학교 때는 육성회비가 있었는데 그때 돈으로 300원을 못 내서 학교도 여러 번 빠졌습니다. 엄마 몰래 학교 가는 척 하다가 동네 뒷산에서 혼자 있다가 내려오곤 했습니다.’

‘나의 50년 인생은 할 말이 많기도 하고, 어쩌면 할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인생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의 책으로 만든다고 하니 기억을 하나씩 꺼내봅니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나의 인생.’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너무 어려워 하셨어요. 또한 보통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글쓰기 작업을 하면 가족에 대한 것부터 떠올리게 하는데, 이분들은 어려서 가정으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많아서 너무 힘들어하시기 때문에 10살 이전의 ‘강아지’에 대한 추억을 단어로 먼저 적어보라고 했지요. 강아지 이름이나 살았던 지역, 기억나는 한 장면 등을 적게 하고, 단어에 조사를 붙이고, 문장을 만드는 식으로 했어요.”
그렇게 3개월간 여러 작업을 한 후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로 들어가게 했다. 그랬더니 신체적으로 ‘아픔’의 증상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아프다거나 힘들어하시더군요. 묻어 두었던 것들이 올라오니 그런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글과 그림으로 함께 도와주신 최선관 상담팀장님과 함께 예배와 기도를 드렸지요. 말씀을 통해서 상처를 치유 받기 시작하니 글이 나오더군요. 놀랍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이들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가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면서 발견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에는 7개월 동안 한층 달라진 그들의 모습들이 적혀져 있었다.

‘새 길이 너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이제 나는 아침이 두렵지 않다. 밤의 악몽에 시달리지 않는다.’

‘하루하루 열심히 지내고 있다. 지금도 글을 쓰는데 아버지에 대한 원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자꾸 든다. 증오는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사랑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언젠가 또 사랑할 수 있다면 이제는 그런 사람을 잘 지켜주고 싶다. 그래서 나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밝게 그려보고 싶다.’


구세군서대문사랑방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김종철 씨 역시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알코올중독에 걸린 아버지 때문에 분노했던 시간들, 잘 살아보려고 했던 시간들이 무너져버리고 ‘하늘이 나를 그만 살라고 하는 것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구세군서대문사랑방 근처에 있는 교회로 달려갔다. 아무도 없는 빈 지하 예배당 바닥에 엎드려 몸부림치며 울었다. ‘제발 좀 하나님, 계시면 나 좀 도와주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내 등 뒤에서 조용히 내 어깨를 감싸며 말씀하셨다.

‘그래…. 나는 너의 주 하나님이다. 너의 간절한 기도를 들었고 이제부터 내가 너를 책임져 주겠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늘 기도하며 착하게, 진실하게 살아라.’


그렇게 술을 끊은 지 이제 2년째. 꼬박꼬박 저축도 하고 있고, 몇 달 후면 임대주택에 입주할 계획도 갖고 있고, 채무도 정리해나갈 것이라고.
노 작가는 “종철 씨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이야기를 써나간 것이, 그리고 다른 분들을 격려해주며 분위기를 잡아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여깁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얘기한다.
“아닙니다. 저희가 감사하지요.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남한테 이야기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내놓아야 하니. 그런데 작가님이 일대일로 다가와 주셔서 때로는 누나처럼, 때로는 엄마처럼 들어주셨습니다. 마음을 열게 해주셨습니다. 책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상상도 못했는데 여러 명이 힘을 합치니 ‘하나님의 또 하나의 걸작품’이 나오더군요.”
지난 2013년도부터 사랑방에서 노숙인 인문학을 가르치며 함께 했던 노경실 작가.
“이상하게도 하나님께서 자꾸만 손을 잡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곳으로 데려가시는 거예요.”
<상계동 아이들>을 비롯해 수백 권의 동화책을 집필한 노 작가가 자신의 달란트인 글 쓰는 것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였고, 그 결과 이주여성 및 노숙인들을 돕게 되었다고. 처음에는 두려운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가족’이라고.
노 작가는 노숙인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거리의 아빠들’이란 호칭을 만들었다. 이후 여러 단체들이 노 작가와 함께 노숙인 문화프로젝트를 가졌는데, 음악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며 자존감을 높이고 합창을 통해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거리의 아빠들’이란 이름으로 합창단을 만들어 지난 2014년에는 제1회 노숙인 창작음악제를 개최했다. 이어 2015년 10월에는 음악뿐 아니라 극과 전시를 함께한 ‘홈리스 문화제’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이루어져라 나의 꿈을’이란 주제로 노숙인문화예술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노숙인과 비노숙인이 함께 어우러져 한 무대를 만들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편견을 좁혀가게 하고 있다.
노경실 작가는 “홈리스는 말 그대로 집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하우스리스가 아니라 홈리스일까요? 물리적인 공간인 House와는 달리 Home은 사회적 관계망까지 포함하는 말인 것입니다. 즉, 홈리스란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관계마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가족이 되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때 변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존재의 개별성에 집중할 때 치유가 일어난다. 한 사람의 이름에, 그의 절절한 이야기에 집중할 때 치유가 일어난다. 누군가를 카테고리에 넣어 이름 짓고, 그를 선망하고 또는 혐오하는 것이 쉽게 일어나는 요즘, 구세군서대문사랑방에서 일어난 따뜻한 변화를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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