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만화에서 배우는 평화 감수성

지난 11월 인터넷 포털 사이트 사회면에는 폭력에 관한 기사가 가득했었다. ‘가득했었다’라는 과거형을 쓰기 무색하게 지금 아니 내년까지도 사회면에 종종 그런 소식으로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폐지 줍던 여성 머리만 30분 때렸는데…>, <만취 주민 무자비 폭행에 70대 경비원 ‘뇌사’>, <거제 잔혹 살인사건 피의자, 경찰이 두둔하고…>, <생마늘 먹이고 거머리 붙이고… 끝없는 양진호…> -11월초 어느 날의 포털 사회면 기사 목록 중 일부

폭력의 소식은 인류 역사에 늘 있어왔다고, 다만 달라진 미디어 환경 때문에 더 자주 우리에게 전달될 뿐이라고 생각해보려 해도 우리 앞에 일어나는 ‘약자에 대한 폭력’은 지금 깊이 돌아보아야 할 ‘오늘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평화와 연대를 위하여
그림책은 단순하면서도 함축적인 문장과 넓은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성 넘치는 그림으로 이루어져,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독자에게 감각적 자유를 선사한다. 대개 유아들이 글자 많은 책을 읽기 전 읽는 쉬운 책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요즘은 바쁜 생활로 감수성이 납작해진 어른들에게 그림책을 권하기도 한다. 글씨로 빽빽한 책이 주는 깨달음만큼 얇은 그림책에 빛나는 통찰과 감수성이 흘러넘치기에.
그중에서도 하세가와 요시후미의 <내가 라면을 먹을 때> (고래이야기, 2009)는 무감각을 일깨우기에 좋은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은 한 어린이가 라면을 먹는 식탁 풍경에서 시작되는데, 내가 라면을 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그 순간에도 세계 곳곳의 또래 친구들은 가혹한 노동과 죽음의 현실에 내몰려 있다는 메시지를 그림책 특유의 간결함으로 표현해낸다.
무척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마지막에 전쟁으로 황량해진 폐허에 쓰러져 있던 남자아이의 그림과 더불어 ‘바람이 분다’라는 한 문장에서 전해져오는 감정은 강렬하다. 바로 그 순간, 책장을 넘기면 밝고 환한 집에서 라면을 먹는 아이가 열어놓은 창문 밖에도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장면의 전환 틈새에는 평화가 무엇인지, 그 평화를 나 혼자만 누릴 것인지, 다른 이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예리한 질문들이 숨어 있다.
책장을 넘기며 폐허에 쓰러져 있는 아이와 안락한 집에서 라면을 먹는 아이가 동시에 존재하는 이 세상의 부조화를 느낀다면, 이는 누군가의 폭력과 죽음에 애통해하며 평화를 지향하는 감수성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는 증거일지도.

고양이를 키우는 쥐들에게 배우는 공존의 지혜
감수성이 구현되려면 지혜로운 실천력이 겸비되어야 할 것. 우리는 엘렌 심의 <고양이 낸시>(북폴리오, 2015)라는 유쾌한 만화에서, 존재양식이 다른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며 공존하는 지혜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어느 날 밤, 생쥐 더거 씨는 집 앞에서 ‘낸시’라는 이름표가 붙은 아기고양이를 발견한다. 공존이 불가능할 것 같은 두 존재가 어떻게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아기 낸시가 자라 자신의 외모와 존재양식이 그를 둘러싼 쥐들과 ‘다름’을 다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애쓰고 고민하는 생쥐들의 전전긍긍함은 ‘공존’이라는 과제를 풀어내는 데는 얼마나 세심한 애씀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다름’을 대하는 방식이 주로 ‘폭력’으로 나타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실천은 약자와 강자를 뒤집어 세상을 보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단순하고 쉬운 이 책들을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평화와 공존에 대한 깊고 진한 질문으로 새로운 해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박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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