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처럼 동화처럼”이라는 모토(motto)를 가지고 깊은 밤 야경길에서 산위찻집(좋은날풍경)을 연 지 2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발로 차면 넘어질 것 같은 0.5톤의 자그마한 트럭이 소꿉 같아서 좋았고, 따뜻한 차를 팔면서 음악을 틀어주면 별빛 내리는 한밤의 오솔길이 동화 같겠다 싶었습니다. 손님 없는 시간에 간간히 글을 쓰고 곡을 쓰면 깊은 밤에도 ‘깨어있는 영혼’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멀리 공연을 가거나 비바람이 거센 날 그리고 몸이 아픈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밤 아홉시가 되면 산위에 올라가 찻집을 엽니다. 새벽 한시 고요가 깊을 때 산을 내려 오구요. 단골이 많이 생겨서 웃음꽃 피는 날이 점점 늘어납니다.
산 아래 야경을 바라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운 빛깔 속에는 미움 다툼 시기 질투가 없지 않을 텐데 말이지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 찰리 채플린의 말이 경전의 한 줄처럼 이미 가슴에 새겨진지 오래입니다.
다리를 시원하게 펴기 힘든 좁은 공간 안에서 같은 동작의 반복 때문에 어깨에 오십견이 찾아왔습니다. 게다가 오래된 차량에 설비이다 보니 고장도 잦아 마치 수리비와 재료비 벌려고 일하는 것 같아 한숨이 쉬어지기도 하지요.

한밤중의 콘서트
그런 시간의 정점인 어느 깊은 가을 밤 느닷없이 한 남자가 세 남자를 데리고 제 앞에 짠! 하고 나타났습니다. 절친 목사님이신데 25년 만에 동창을 만나고 헤어지기 전 친구들과 함께 산위찻집을 일부러 찾아주신 것입니다.
차 한 잔씩 들고 길어진 이야기는 차 향기보다 짙었습니다. 네 분은 고교시절 중창단 멤버로 활동하셨답니다. 세월 지나 만나니 그중 셋은 목사가 되어 있었고, 한 명은 사업가가 되어 있었답니다.
추억 속을 거니는 네 남자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산위찻집을 찾은 목적 중 하나, 바로 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 오늘은 제가 누군가에게 불러주는 노래가 아니라, 저를 찾아온 누군가가 저에게 불러주는 노래입니다.
오늘 그들은 그립던 만남에 그 시절 함께 불렀던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산위찻집에서 그 추억의 노래를 한 사람인 저에게 불러주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라니….
남성들의 하모니라니….
짧은 만남,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돌아간 후 노래의 잔향이 천사들의 숨결같이 남아 저는 엄마 앞 소년같이 펑펑 울고 싶었답니다. 더욱이 가슴에 깊은 감동이 더해졌던 것은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가 어떻게 쓰인 시인지 그 노래를 사랑하여 알았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어느 날 저녁 프란치스코의 문을 두드리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하고 나가 보았더니 험상궂은 한센병 환자였습니다. 그는 몹시 춥다며 몸을 녹일 수 있는 방을 하나 내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를 맞아 방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잠시 후 그는 배가 너무 고프다며 저녁 식탁에 자기도 앉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깊은 밤 그 환자는 다시 간청했습니다. 자기가 너무 추우니 프란치스코에게 알몸으로 자기를 녹여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기의 옷을 벗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 환자를 녹여주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프란치스코가 눈을 떠보니 그 환자는 온 데 간 데 없었습니다. 신기한 건 왔다간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비천한 사람을 찾아와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가 바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문’이라는 이야기.

깊은 밤 저를 찾아와 평화의 노래를 불러준 네 분의 노래는 하늘의 메신저 가브리엘의 노랫소리 같았습니다. 제 영혼에 성 프란치스코 같은 거룩한 향기를 불어 넣어준 하늘의 아름다움 같았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네 분의 삶과 신앙이 어디서든, 누굴 만나든 하나님 나라의 평화로 따사로이 전해지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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