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이 온다’는 ‘자서전 쓰기학교’에서 만난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는 코너입니다.

그야말로 기록적인 폭염이었다. 나는 그 폭염에도 조깅을 쉬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달리는 일은 나에게 의무처럼 부과된 일과였다. 그날도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고, 그늘을 골라 달리는데도 길 위에는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찜통이었다. 땀이 온몸에 흘러내렸다. 머리에서 얼굴로 떨어지는 땀방울은 금세 미지근해졌다. 당장 숨이 막힐 듯했다.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문득 작년 여름, 동해에서 서해까지 이어진 DMZ를 열하루 동안 부르튼 발을 절룩이며 뙤약볕과 폭풍우를 가로질러 걸었던 목사님이 떠올랐다.
“차라리 작년이 나았어. 올해였다면 더 힘들었을 거야.”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어?” 하고는 멈춰 섰다. 작년 이맘때쯤 트럼프와 김정은이 마치 인터넷 전쟁게임이나 할 것 같이 상대를 향해 험악한 말로써 도발하였다. 세계는 한반도에서 곧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언론들은 전쟁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얼마나 많은 재산 피해가 생겨날지 책상에서 숫자놀음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위험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목사님이 DMZ를 걸어가던 그 시간은.
그리고 지금 한반도는 그때와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은 대화를 시작했고,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도보다리 대화를 나누었으며, 급기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핵을 완전히 폐기한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은 한반도의 새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그때 뒤통수를 쿵 치는 듯한 한 마디가 내 입에서 새나왔다.
“어쩌면!”
그래, 그렇게 벌레처럼 한반도의 동강 난 길을 걸으며 기도한 한 사람의 땀이 어쩌면 오늘 이 땅의 평화로 이어진 건 아닐까. 감사했다. 고마웠다. 작년에 그는 우리 앞에서 DMZ를 걸어간 이야기를 하면서 그랬다. 천둥 번개가 치던 날 길을 나설 때는 두려움에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고…. 그는 그렇게 벌레가 되어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제물이 되듯 기도를 심은 셈이었다.
물론 그렇게 기도를 심은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기적 같은 한반도의 변화들은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동떨어져 있지 않을 게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문자를 했다. 감사했다. 좀 있다가 목사님이 답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제가 고맙습니다. 제가 걷기를 시작한 지 꼭 1년이 되던 날, 그날 북미회담이 열리는 것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최근의 흐름과 변화를 보며 감사와 기대가 크답니다. 늘 건강하고 평화롭기를 빕니다.”

아, 그랬구나. 나는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그 비밀을 목사님은 이미 알고 계셨구나. 하나님이 당신을 불러내셨다는 고백이 아마 목사님의 기도 속에 담겼을 것 같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하나님은 목사님을, 그 연약한 인생을 불러내어 벌레처럼 기어서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기도하며 가게 하였을까?
목사님의 표현처럼 “허리가 잘린 채 신음하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고스란히 방치되고 있는, 피와 고름을 여전히 흘리고 있는” 이 나라 이 땅을 걷고 싶게 만들었을까. 두려움을 내려놓고 천둥과 번개 속을 뚜벅뚜벅 걷게 하였을까. 그리고 아마도 올 여름 그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누군가의 기도가 다가올 평화의 세상을 위해 제사처럼 바쳐지지 않았을까.

박명철 기자
자서전 집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아름다운동행 자서전 쓰기학교의 주강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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