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소년의 탄생> 김신 지음, 몽키텍스트, 2018년, 271쪽, 16000원

디자인이라고 하면 뭔가 근사한 것을 기대하지만 디자인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에 녹아있다.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이 쓴 <쇼핑 소년의 탄생>에서는 공기처럼 떠돌면서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디자인, 당신에게 말을 걸고 설득하는 디자인 이야기들이 꾸밈없이 펼쳐진다. 디자인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것도 아니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래서 단지 관련된 일을 한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 내게 디자인에 관한 의견을 물어오면 언제나 당황스럽다.
지난주에도 문을 연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좀처럼 손님이 늘지 않아서 걱정이 많은 음식점 사장님이 휴대용 휴지를 만들어 와서 디자인이 어떤지 평가해 달라고 물었다.
“이 정도면 훌륭하네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으로 성의 없는 대답이겠으나 ‘왜 홍보 수단이 휴대용 휴지여야 했는가?’ 등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게 아니라면 실제 결과물 자체는 충분히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사실 정확한 요구 사항을 반영하여 전문 디자이너가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만든 제작물들은 기본적인 수준을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보는 사람마다 만족도가 다를 때가 있는데 보통은 ‘각자의 취향’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어진 홍보물의 외양뿐만 아니라 주어진 홍보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의 여부이다.
계속해서 휴대용 휴지를 예로 들어보자. 길에서 나누어주는 사람마저 살짝 자부심이 생길 만큼 훌륭하게 만들어진 홍보물. 귀찮을 것 같아서 모른 척 지나쳤던 사람들조차 발걸음을 돌려 받아갈 정도라면 새로 만든 휴대용 휴지는 그야말로 대성공! 덕분에 음식점을 찾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늘게 될거다.
‘이렇게 멋진 홍보물을 내놓은 음식점이라면 분명 멋진 인테리어를 갖추고 아주 특별한 요리를 팔겠지.’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과연 홍보물을 보고 찾아온 손님들의 높은 기대치를 제대로 충족시킬 수 있을까? 기대란 크면 클수록 실망도 큰 법, 일부러 찾아온 손님들에게 실망감만 안겨 줄 수도 있다. 심지어 홍보물에 속았다며 불평하는 손님들까지 생긴다면 어찌할 것인가. 돈 들여 길거리 홍보물을 뿌리기 전만도 못한 상황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너무 좋은 홍보물이 오히려 음식점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나 할까.

디자인은 어때야 하는 걸까? 좋은 디자인이 반드시 성공적인 디자인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쩌면 성공하지 못한 디자인은 실은 이미 그 자체로 좋은 디자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알맹이는 부실한데 얄팍한 수로 성공하고 싶은 도둑놈 심보가 아니라면 디자인은 안과 밖이 비슷한 정도로 어울려야 한다. 밖은 너무 화려한데 안이 볼품이 없으면 실망감이 커지고, 안은 충실한데 밖이 볼품이 없으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디자인이 결국에는 정도(程度)일 것이다.
<쇼핑 소년의 탄생>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한 장면을 인용한다.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건 천박한 사람들뿐일세. 세계의 진정한 수수께끼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있어.”
언뜻 겉모양을 지나치게 꾸미고 예민하게 신경 쓰는 사람들의 허세이거나 약점을 감추기 위한 말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 말은 오히려 강한 정신력, 고결한 도덕성, 내면의 아름다움 또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겉모양에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니 궁극적으로는 분수를 지키는 디자인을 넘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고결한 영혼이 외양으로 표출되는 디자인을 지향해야 한다.
사족. 제품이나 서비스의 겉모습이 이러해야 하는데, 나의 첫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디자인하우스에서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