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히고 밟혀도 아랑곳없다. 재건하고 재건한다. 다시 푸르고 푸르다. 다시 길을 내고 길을 낸다. 우리들 발아래 세상이다. 발아래 보도블록 틈새마다 이름 모를 풀들이 저마다 세상의 푸르름과 아름다움에 동참하고 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정성인데 무심히 밟고 지나는 게 참으로 송구하다.
풀꽃사진을 찍으면서부터 나에게 일어난 혁명이 있다. 요 자그마한 생명체들을 밟고 싶지 않아 까치발로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말한다. ‘그러다가 지각하겠네.’ 마음속으로 답한다. ‘육신의 길은 그럴 수 있겠지만 영혼에겐 첩경이 될 테다.’ 까치발은 천상의 탱고라고 써 보고 노래를 만들어 흥얼거리며 다닌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과 달라서 사람의 길이 대개 진리와 거꾸로 가고 있음을 자연을 통해 많이 보게 된다.
어느 여름 날, 어린 해바라기가 비바람에 혹독한 시련을 당하고 있었다. 세찬 바람에 허리가 곧 부러질 것 같았다.
“해바라기야, 네 허리 부러질까 걱정된다야! 어쩌니?”
해바라기가 말했다. “걱정이 뭐예요?“
물론 내가 나에게 묻는 말이었지만 해바라기를 통해 물으니 나 스스로도 생각지 못한 답이 나왔다.
“걱정이 뭐예요?”
어쩌면 사람 세상에는 있고, 자연 세상에는 없는 표현들이 있겠다 싶었다.

틈새에 핀 꽃을 사진 찍다보면 꽃들의 말이 들려오는 것 같다. ‘자연은 천상의 스피커다’ 싶기도 하다. 길을 가다 무심결에 바라 본 꽃.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낮에도 어두운 영혼들을 위하여 신은 온데다 꽃을 켜 두셨나보다. 계절의 정경들 속에서 소유보다 값진 향유를 만끽한다. 꽃피는 별에 소풍 나온 우리는 신의 자녀들. 그분의 사랑 속에서 아름다움에게 무참히 당한다. 그 아름다움이 감사를 깨운다. 감사는 천국의 열쇠일 테다. 사랑이신 그분을 노래한다.’
그날 저녁 황혼이 유난히도 아름다웠다.
‘아침이슬이 신의 땀방울이라면 저녁노을은 신의 눈시울이리라. 하루를 지으시고 하루를 보시는 신의 정성을 감사하고 노래하리라.’

자연에게 가까워지려는 나의 노력은 내 영혼을 참으로 신선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자연에게서 받아 사람에게 주어야지’라는 생각이 어느덧 마음 한켠에 자리잡아 사람을 의지하던 마음이 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자라감을 느끼게 한다.
꽃을 좋아하고 별을 노래하는 이들은 말한다. 신은 사랑이 아닐 수 없다고. 정말 그런 것 같다. 대자연을 보면 살아 있는 거대한 경전과도 같다.
어느 시인은 “꽃은 우주를 여는 창문”이라 표현했다. 꽃이 우주의 창문이라면 그 창을 열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꽃 너머 별 너머엔 그 나라. 신의 세계가 펼쳐질까? 거기서 꽃을 통해 신이 세상을 보고 계시다 생각하면 꽃은 신의 눈망울일지도. 이런 상상은 현실세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준다. 지루한 일상을 신비한 여행길로 바꾸어 준다. 이상은 이성을 견인하고, 상상은 현실을 견인하리라 싶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신의 마음과 닿아있다. 세상의 말과 자연의 말은 다른 것 같다. 그 엇갈림이 희망 같아서 신선하다. 빗방울 떨어지는 어느 여름 날 커다란 연잎을 보며 써 본 시가 있다. 자연은 신의 마음과 인간의 길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선 곳이 맑지 못해도
하늘이 내린 맑음
탐할 수 없다.
누군가의 목마름 위해
보석처럼 떠받들자
쏟아지는 비에
그래 그래
고개만 끄덕이자
연꽃 향기 사라진 긴 정적
그리움은 향기보다 짙다
큰 귀를 가지고
큰 나팔로 살으라
귀 있는 자는 볼찌라
눈 있는 자는 들을찌라


<연잎연정> - 좋은날풍경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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