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준비하며 오히려 ‘준비된 삶’ 살았다

박 선생(그는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취재를 허락했다. 여기서는 편의상 ‘박 선생’으로 호칭한다)을 만나게 된 건 김정삼 변호사(법무법인 치악)의 소개였다.
<유언 - 남은 이들을 위한 사랑의 편지>(아름다운동행)를 펴낸 김 변호사는 판사 생활을 은퇴한 뒤로는 ‘유언 쓰기 운동’ 전도사로도 활동 중이다.
김 변호사가 박 선생을 소개한 까닭은 그의 한결같은 주장, 곧 “어떤 유언을 남기는가 하는 문제는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박 선생이 직접 삶 속에서 실천해 온 증인이기 때문이었다.

올해 76세인 박 선생은 1990년, 그러니까 58세 때 처음 유서를 썼다. 체신부 산하 전화국에서 32년 동안 근무, 중견간부로 일하던 박 선생이 1999년 정년 4년을 앞두고 명예퇴직을 한 때였다. 그 후 매년 연말이면 이미 쓴 유서를 뜯어서 그때의 상황에 맞게 새로 수정하고, 새로운 해를 맞았다. 이렇게 반복해 온 지 올해로 28번째이다.

“내가 죽으면 뜯어볼 것(죽기 전에는 개봉엄금)”이라 매직으로 크게 쓴 1호 봉투 속에는 3가지의 유서가 들어 있다. 하나는 가족 모두에게 비상시의 조치사항을 쓴 것이고, 또 하나는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 쓴 글이며, 마지막 하나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쓴 글이다. 각각 A4 용지 두 장씩, 전부 여섯 장의 유서인 셈이다.
가족에게 보내는 유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언젠가 있을 내 삶의 끝을 생각하며 내 의지를 정리해둔다. 내 생명의 종말이 선언되고 인간으로서의 의지와 의욕 등 모든 기능이 정지(뇌사상태)됐다고 단정할 때가 오게 되면 즉시 A장기기증기관과 B병원에 연락을 취해라. 내 몸을 살아 있는 형제를 돕기 위한 생명으로 화하도록 나의 눈과 각종 장기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불쌍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어 활기찬 새 삶을 시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삶을 살게 해라. 또한 남은 것은 인간의 병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배움터인 B병원에 주어 좋은 실험도구가 되어 의술 발전에 도움이 되게 하여라. 남에게 줄 육체를 생각하며 술마저 끊고 신체관리에 나름대로 신경을 써 왔음도 이해하기 바란다.”

이 글에는 장기기증기관과 병원의 자세한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자세히 안내해주는 내용과 장례 절차는 어떻게 할지, 꼭 필요하다면 장례 때 연락해야 할 사람들의 명단과 연락처 등이 담겨 있다.
아들과 딸에게는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지키며 화목하게 살 것과 하나님께서 보살펴주신 데 대한 감사의 내용을 담았다. 무엇보다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 녹아 있다.

“나는 한 평생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바탕으로 ‘오직 이마에 땀을 흘리자’,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자’라는 자세로 일관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살아왔고, 가훈에서 보듯이 늘 감사하는 자세로 서로서로 도와가며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면 안 될 일이 없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수많은 세월 동안 눈만 뜨면 ‘감사, 협동, 전진하면 된다’를 이 나이 먹도록, 오늘 아침도 묵상기도 후에 외치며 이제껏 살아왔단다.”

아내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절절하게 담아냈다. 풍족한 유산을 남기지 못했으나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는 말과 남은 재산을 재량껏 처분하라는 당부, 금전 목록과 아끼는 물건, 컴퓨터와 문서파일, 메일계정 등의 암호, 신용카드 비밀번호, 통장 비밀번호 등 비망록들을 적어두어 당황하지 않고 사후의 일을 처리하도록 배려했다.
박 선생은 유서를 쓰면서 미션스쿨을 다닐 때 가졌던 신앙을 새롭게 회복하기도 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하여 청빈하게 공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2005년에는 시신 기증, 장기 기증 서약을 했고, 이 때부터 원주에서 내로라는 술꾼이던 그가 건강한 장기를 물려주기 위해 술을 끊고 몸을 돌보았다.

유서를 수정하고 나면 다시 1년 동안은 잊고 살지만, 연말에 다시 꺼내 수정할 때면 새로운 마음가짐을 하게 된다고. 변화 없는 삶은 반성하고 욕망에 따라 살던 삶도 뉘우쳤다.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Prepare death if want life)”는 말처럼 박 선생은 매년 죽음을 준비하는 유서를 쓰면서 오히려 더 준비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박 선생의 유서를 살펴본 김 변호사는 “여기에 몇 줄만 첨가하면 법적 효력까지 받을 수 있겠다”고 평가했다.

* 사진 설명 : 박 선생은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쓴 일기를 지금까지 모아두었다.

박명철 기자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