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물고기는 알고 있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
조너선 밸컴 지음, 양병찬 옮김, 에이도스, 2017년, 380쪽


미술관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연못 안에는 금붕어들이 사는데 해마다 사뭇 번성하여 이제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하루는 견학 온 유치원 선생님이 금붕어 몇 마리를 분양 받고 싶다 해서 흔쾌히 승낙했다. 한가로이 살만 패둥패둥 찌는 금붕어들이 사료만 축내는 게 밉쌀 맞아 보였는데 내심 잘되었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나, 유치원 선생님, 버스 기사님까지 연이어 달려들었지만 아무도 금붕어 한 마리를 잡지 못했다. 페트병, 양동이, 뜰채까지 연이어 동원했지만 허사였다. 옆에서 소리 높여 응원하는 유치원 아이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보름산 연못 흔하디흔한 금붕어 한 마리, 이걸 잡지 못하다니, 나는 바로 그 순간 매우 열등한 인간으로 전락했다.

처음에는 나의 느려터진 운동신경 탓에 재빠른 금붕어를 잡지 못한 것뿐이라고 쉽게 단정 지었다. 그런데 보자보자 하니 금붕어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읽고 있었다는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작심하고 유심히 관찰했더니 신빙성 있는 근거가 몇 가지 발견되었는데, 일단 금붕어들은 아침에 내가 출근하면 수면 위로 몰려들어 입을 뻐끔거린다. 내가 밥 주는 사람이란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이 아니라면 내가 아무리 오고 가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밥 먹는 시간을 아는 것이다. 사람을 구분하고, 시간을 인지하는 물고기라니 놀랍지 않은가. 충분히 의심 갈 만한 정황을 포착한 나는 본격적인 실험에 돌입했다. 그리고 물고기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연구한 <물고기는 알고 있다>를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엄마가 밥상을 차려 놓고 방에 누운 내게 “밥 먹어!” 하고 부엌에서 크게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식사와 관련한 많은 정보를 여러 복합적인 경로로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배꼽시계’로 식사 시간을, 냄새로 메뉴를, 목소리로 엄마의 감정 상태까지 정확히 파악해서 식탁으로 가야할 적절한 타이밍을 결정한다. 금붕어들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방법, 청각. 귀가 없다고 물고기를 귀머거리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오해이다. 물에서는 소리가 훨씬 더 쉽게 전달되기 때문에 굳이 외부 청각기관이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금붕어들은 주차하는 차 소리, 연못으로 다가오는 소리, 사료를 꺼내려고 창고 문 여닫는 소리를 구분한다. 미술관을 방문하는 여러 차량의 소리라든가 연못을 구경하는 여러 관람객들에게 전혀 반응하지 않는 반면, 창고 문을 여닫는 소리에 아침이 아니어도 수면에 모여드는 예민한 녀석들이 있다.

두 번째 방법, 진동 감각. 물고기의 청각이 예민해도 공중에서 날아온 소리 에너지의 약 99퍼센트는 수면에서 반사된다. 대신 물고기는 고체를 통과한 소리, 예컨대 땅을 통해 전파된 진동을 정확히 탐지하여 정보를 얻는다. 멀리서부터 접근하는 한 걸음 만으로도 나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니 물속에 담겨져 휘젓는 허접한 도구 따위는 금붕어의 레이더망에서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세 번째 방법, 후각.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물고기들은 뛰어난 후각을 지녔다. 금붕어들도 수면 위에 던져져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메마른 사료가 먹을 만한 먹잇감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눈치챈다. 심지어 연어나 장어 같은 회귀 어류들은 처음 태어난 강의 ‘어머니 같은 물’, 모천수(母川水)를 올림픽 규격 수영장 크기에 천만분의 1방울만 떨어뜨려도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냄새의 기억을 더듬어 먼 거리를 헤엄쳐 특정 산란장소로 돌아가는 것이다.
맑고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미술관 연못을 바라보면서 얼음이 녹기를 기다린다. 차가운 얼음장 밑에서 겨울을 나고 있을 금붕어를 어서 만나고 싶어서다. 올해는 미술관 애완견 ‘복돌이’와 ‘바둑이’처럼 금붕어 한 마리 한 마리에게도 이름을 붙여 줄 작정이다. 금붕어들아, 대신 너희들도 나를 보면 복돌이와 바둑이가 꼬리치듯 신나게 지느러미를 흔들어 주렴!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디자인하우스에서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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