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 팬서>

흑인, 아프리카 출신 ‘블랙 팬서’
아이언맨·헐크·토르·엑스맨·스파이더맨 등과 같은 영웅물로 유명한 ‘마블 스튜디오’에서 조금은 독특한 주인공을 다룬 <블랙 팬서>를 내놓았습니다. 블랙 팬서는 할리우드 전체 영웅물을 통틀어 가장 부자인 캐릭터입니다. 엄청난 재력과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대표적 재벌 캐릭터인 배트맨이나 아이언맨 정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력의 소유자인 데다가, 과학기술력 또한 그들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런 블랙 팬서가 흑인이고,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겁니다.
블랙 팬서는 아프리카 동쪽, 케냐와 에티오피아 사이에 위치한 가상의 약소국, 와칸다의 왕자입니다. 와칸다는 전 세계 최빈국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희귀금속인 비브라늄을 독점해 그 어느 나라도 쫓아올 수 없는 부와 기술력을 지닌 세계 최강국입니다. 다만 그들의 과학기술이 다른 국가들과 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로 너무 초고도화되어 있어서, 스스로 고립 정책을 펴고, 최빈국으로 위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기아·난민·재해·분쟁 때문에 UN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이 머리를 맞대고 그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와중에, 와칸다 내부에선 그런 세계정세에 개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내부 갈등이 불거집니다. 만약 와칸다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하겠지만, 동시에 전 세계 정치·경제·문화적 지형도도 크게 바뀌게 될 겁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소국이 지구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달한 나라라고 하니, 참으로 낯설지 않나요?

인종차별적 시선을 갖춘 우리
이제 영화 속 환상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가난과 낙후의 상징입니다. 더불어 원시와 야만의 땅으로 인식된 지 오래지요. 그뿐인가요? 아프리카에 기원을 둔 흑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인종차별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서양 열강이 행한 착취에 기인합니다.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에서 행했던 만행은 상상 이상으로 훨씬 끔찍하고 비열합니다. 그들은 아프리카를 철저히 유린하고는 가차 없이 팽개쳐놓았습니다. 그런 그들 악행의 뿌리에는 서구사회가 지난 수천 년간 만들어낸 상상의 지형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구 유럽을 이성과 정신, 그리고 문명으로 상정해놓고, 비유럽 사회는 감성과 육체, 그리고 자연으로 몰아놓은 거지요. 정신이 육체를 조종하고, 문명이 자연을 개척하듯, 자신들이 비유럽 사회를 다스려야 한다는 점을 정당화했습니다. 정신을 육체가 뒷받침하듯, 비유럽국가는 그저 서구 유럽을 받쳐주는 용도면 충분하다는 거죠.
바로 이 지점에서 인종차별적 시선도 만들어졌습니다. 백인을 지성과 이성을 갖춘 존재로 간주해놓고, 흑인은 신체적·감정적 존재로 한정해놓았지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관습만 봐도 ‘검은색’은 대부분 부정적인 뉘앙스를 띱니다. 반면에 ‘흰색’은 긍정적으로 사용되지요.
그런데 영화는 이걸 뒤집어 놓습니다. 기존에 백인들이 보여줬던 수많은 장점을 이 영화에선 흑인이 가진 반면, 백인은 그저 사악하거나 맹합니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접하며 미적 기준마저도 서구화된 관객 입장에선 캐릭터에 몰입하기조차 쉽지 않을 겁니다.

서구 백인의 시각으로 형성된 고정관념
우리 속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우리의 관점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시선, 서구백인의 시각으로 형성된 결과물일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서구 사회를 향해 애정을 갈구합니다. 요즘 인기 있는 TV 예능을 보십시오. 유럽 백인사회로 들어가 한국 음식을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그들로부터 우리 것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 뿌듯해합니다. 반면에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를 찾아가 그러는 프로그램은 전혀 없습니다. 언론 환경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정세를 분석하면서 서구 외신을 인용해 권위를 내세우는 일은 너무나도 흔하지요.
‘강자’인 서양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우리의 민낯을 보며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임택
단국대학교 초빙교수.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영화이론을 수학하고, 대학에서 영화학과 미학을 강의하며, 철학과 인문학을 통해 영화를 독해하고, 시대와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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