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가정에서 15년 넘게 보살피며 필자는 경험으로 ‘치매와 동거하기’에 대한 지혜와 지식을 얻었다. 그리고 치매가 고령화 사회의 불청객인 것을 인지하고,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돕기 위해 구원투수로 나섰다. 연재를 통해 어머니와의 행복한 동행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소개한다. <편집자 주>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자식 사랑’이라는 새로운 기억을 만드셨던 어머니를 기억해본다. 어머니가 방에서 나오시는데 향기가 진동했다. 진한 꽃향기가 어머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 전체에서 나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난, 화장이 좋아, 좋아.”
“어머니, 예쁘세요. 귀엽기도 하시고요.”
“머리 하얀 거, 싫어.”
자세히 보니 눈썹 균형이 안 맞는다. 어머니는 현관 앞 거울을 보며 머리를 꾹꾹 누르신다. 웃음이 났지만 참았다. 어머니의 눈썹을 고쳐드리며 말했다.
“어머니, 예쁘세요. 정말 예뻐요.”
“네 아버지가 화장품 사줬어.”
“그러셨어요.”
어머니에게 왜 화장을 하셨는지 여쭈어 보았다. 혹 무단가출의 신호는 아닌지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화장하시고 어디 나가시면 안 됩니다.”
“안 나가.”
“그럼 왜 화장하셨어요?”
“난 화장이 좋아.”
어머니는 젊은 시절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으셨다. 손이 귀해 자식 낳으라고 몸보신 약이나 좋은 것은 어머니에게 먼저 갔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마음 깊은 곳에 두고 계셨다.

여러 번 접히고 구겨진 만 원짜리 세 장
갑자기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신다. 따라 들어가 보니 침대 위에 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 차곡차곡 쌓아 놓으셨다. 거의 매일 아침마다 하시는 일이다.
“어머니! 또 옷 쌓아 두셨네요?”
“내 옷이야.”
어머니가 가방을 열더니 지갑을 꺼내신다. 여러 번 접히고 구겨진 만 원짜리 세 장이다.
“이거, 아들 써.”
“어머니! 저는 이제 학생이 아니에요. 어머니 손녀도 둘 있잖아요.”
“아들 차 사줘야지.”
“저, 차 있는데요.”
“아니, 하얀 차 사야지. 하얀 색.”
어머니의 말씀에 놀랬다. 몇 개월 전 내 차를 타고 병원에 가실 때, 차 이야기를 했었다. 다음에 차를 바꾸면 어머니 좋아하시는 색깔의 차로 바꾸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다른 것은 기억 못하시는데, 왜 차 이야기는 기억하시는 것일까? 그때도 차 사려면 3천만 원 필요하다고 하니까 지갑에서 3만 원을 꺼내주셔서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마음에 새긴 자식 사랑
자식의 필요나 자식을 위한 희생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은 머리에 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치매 어머니의 기억력이 놀랍다. 웃으며 스쳐가며 한 얘기인데도 어머니에게는 심각한 일인가 보다. 어머니는 아들, 차 사주겠다는 생각을 마음 깊은 곳에 새기고 또 새겨 놓으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에 뭉클한 그 무엇이 내 속에서 올라왔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치매는 자식에 대한 사랑 앞에 항복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자식을 챙겨주고 베풀어 주실 것들을 의도적으로라도 찾아드리면 좋을 것 같다.

나관호
‘좋은생각언어&커뮤니케이션연구소’와 ‘조지뮬러영성연구소’ 대표소장이며, 목사, 문화평론가, 북컨설턴트로 서평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추천 우수도서 <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 <생각과 말을 디자인하면 인생이 101% 바뀐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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