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맛>
누카가 미오 지음 / 서은혜 옮김 / 창비


요즘은 ‘사랑’을 어떻게 배우는지 잘 모르겠으나 예전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던 시절에는 “사랑을 책으로 배웠어요!”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나는 이 말을 간접 경험으로 만족하고 마는 책 읽는 이를 향한 조롱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지난 글에도 소개된 바 있는 <꿀벌과 천둥>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피아노 음악을 배웠다. 가장 대중적이라고 여겨지는 피아노라는 악기와 그 악기로 경쟁하는 콩쿠르의 분위기를 더 깊이 이해하였고, 심지어 그 매력에 풍덩 빠져들었다. 연주회장을 몇 번 찾아간들, 음악 파일을 몇 번 들은들 알 수 없을 법한 것들이었다. ‘음악을 연주하는 책’이라고나 할까, 이런 차원의 감상은 책이 아니면 힘든 것이리라.
나의 관심이 이번에는 체육으로 향했다. ‘운동장을 달리는 책’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책상이라는 최소한의 움직임만 허용하는 행동반경 안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와 글 읽기가 체육을 어떻게 끌어들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달리기의 맛>이다.

육상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
일하기 위해서 먹는 걸까, 먹기 위해서 일하는 걸까?
고상한 척 하지 않고 적나라하게 이 질문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 ‘달리기’이다. 육상 선수들은 더 빠르게, 더 오래 달리기 위해서 잘 먹어야 한다.
그들은 대회 스케줄에 따라 철저히 식이요법을 한다. 달리기 전에는 수분도 보충하고 공복도 만복도 아닌 딱 좋은 위장 상태를 유지한다.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마음의 훈련도 중요하다. 육상 선수, 특히 장거리 선수는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강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한계에 다다른 몸과 나누는 대화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달리기의 맛>은 육상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역전 마라톤의 유망주 소마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면서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마음이 흔들린다. 재활치료를 하면서 소마는 앞서 달리는 데 익숙했지만 언제부턴가 동생 하루마에게 추월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즈음 미야코를 만났다. 미야코는 부모의 다툼과 이혼을 겪으며 녹록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스스로 요리하고 음식을 제대로 차려 먹으면서 서서히 자존감을 회복한 친구였다. 미야코는 소마에게 섣부른 희망이나 격려의 말 대신에 “달리기로부터도, 동생에게 지는 것으로부터도 도망쳐도 된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며 제대로 된 위로를 건네고, 이후 소마는 미야코에게서 밥 짓기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밥 짓기는 달리기와 달리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오직 먹는 이를 다독이고, 먹는 이에게 힘을 주며, 먹는 이가 쉬어 가게 만들 뿐이다. 이 시간을 통해 소마는 시간과 정성을 다해 노력하더라도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 인생임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굴복이나 체념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로써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인정함으로써 소마는 육상이 아닌 다른 꿈도 꿀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장거리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는 어른도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를 비롯한 내 주변에는 여전히 아파하는 어른들이 대부분이다.
청춘 시절만큼 지금도 아프지만 이제는 어른이기 때문에 짐짓 의연하게 인생을 달리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에게도 열심히 노력했기에 내가 지금 이만큼 살고 있다며 듣기 좋은 거짓말이나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인생이라는 장거리 달리기는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게 아닐까. 그리고 나보다 더 빨리 달린 사람들을 쿨하게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달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사람을 좋은 어른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장다운
보름산미술관에서 미술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전에는 디자인하우스에서 문화예술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다.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스포일러 성격의 리뷰 글보다는 어떤 책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일부러 책을 사게 만드는 이야기를 하자는 무모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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