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누가복음 8:43~44).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고침을 받은 이야기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단히 중요한 예수님의 이적이다. 그렇다면 혈루증이란 도대체 무슨 병을 말하는 것일까?
신약의 헬라어 원문과 레위기 15장의 히브리어 원문을 참고해 ‘혈루증’을 좀 더 의학적으로 번역한다면 ‘자궁출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호 연재에서 레위기 15장에 따르면 월경 기간 동안은 7일간의 격리(생리휴가)가 주어진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정상적 월경이 아닌 비정상적 출혈에 대해서도 같은 율법이 적용됨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의 불결기가 아닌데도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그의 불결기를 지나도 계속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모든 날 동안은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레위기 15:25)

정상적인 월경일 경우 7일간의 격리는 여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었겠지만, 만약 그런 출혈이 한 달, 6개월, 1년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육체적으로 너무나 힘든 상태였을 것이고, 물이 귀한 가나안에서 제대로 씻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요즘처럼 생리대도 없을 때 그녀가 감내해야 했던 어려움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부정하게 여겨져 사실상 세상과 격리됨으로 느껴야 했던 외로움과 절망이었을 것이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들은 철저하게 격리되었고, 그가 앉았던 자리에 손을 대는 것도 부정하게 여겨졌다.
그가 앉은 자리를 만지는 자도 다 그들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레위기 15:22)

그렇게 부정하게 여겨지는 여인이 군중 속으로 들어간 것도 모자라 화제의 인물인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는 것은 정말로 목숨을 내놓은 행동이었을 것이다. 혈루증을 앓는 것이 밝혀졌다면 그녀는 돌에 맞아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과 12년 동안 고통 받은 여인을 향한 주님의 애틋한 마음과 치유의 능력이 합해져서 여인은 치유된다.
그렇다면 그녀가 앓았던 정확한 병명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정황상 자궁근종이나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사실 복음서의 짧은 본문만으로 정확한 병명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또한 예수님이 고쳐주었으면 그걸로 끝이지, 그 병명을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온전히 믿는 의사들이 병명을 찾고자 고민하는 이유는 직업적인 본능뿐 아니라 성경이 신화가 아닌 사실을 기록한 책이라는 것을 온전히 믿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종훈
닥터홀 기념 성모안과 원장이자 새로남교회 월간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대학시절부터 성경 속 의학적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과 <성경 속 의학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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