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각인형에 아로새긴 ‘선교극의 꿈’

충북 충주시 동량면, 남한강을 한눈에 굽어보는 시원한 산기슭에 극단 ‘보물’ 김종구 대표(61)의 마리오네트 공방이 있다. 컨트롤러에 연결된 철사를 이용, 다양한 동작과 감정 표현까지 가능한 마리오네트는 유럽이 고향인 목각인형이다.
깎아낸 나무톱밥과 수북한 나무먼지 사이로 비스듬한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김 대표의 공방에는 온갖 목공 도구와 제작 중인 목각인형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곳에서 김 대표는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몇 달씩 걸리는 인형 제작에 ‘공들이고’ 있다. 먹고 잠자고 텃밭을 가꾸는 시간 외에는 작업장에 틀어박혀 인형을 깎는 그는 국내 유일의 마리오네트 제작자 겸 연출자다.

마흔 여섯에 떠난 러시아 유학
김 대표는 원래 건축 인테리어 사업자였다. 접대를 핑계로 환락에 빠져 살다가 기독교 신앙에 입문하면서 정신을 차렸다. 잘나가던 인테리어 사업을 접고 정직하게 땀 흘리는 노동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호떡장수, 택시 운전, 군고구마 장수, 아파트 공사장의 질통지기, 농장 머슴살이, 장돌뱅이 등이었다.
겨우 입에 풀칠하는 삶이었지만 정직한 땀은 “죄악의 냄새 진동하는 구렁텅이”에서 뒹굴던 그의 영혼을 맑게 정화시켜 주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이었다. 한때는 신학을 공부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현실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만난 것이 인형극이었다.
“개척교회 여름학교에서 인형극 선교단의 공연을 보고 거기에 꽂혔다. 아, 저거다! 저걸 해야겠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보리떡과 물고기’(이것이 줄어 지금의 인형극단 ‘보물’이 되었다)란 선교인형극단이었다. 교회와 고아원, 재활원, 양로원 등을 다니며 선교극을 공연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갈증이 채워지질 않았다. 그래서 46세가 되던 해 김 대표는 훌쩍 러시아 유학길에 올랐다.
“2백년 역사를 지닌 인형극 대학이었다. 러시아어는 못하니 제작학과에 들어가 목각인형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새벽에 도시락을 두 개 싸들고 학교로 가서 밤늦도록 작업실에서 살았다. 그런 나의 모습이 담당교수의 눈에 띄었다. 날이면 날마다 작업실에 붙박혀 있으니 도대체 누군가 싶었던 것이다. 학비와 생활비가 떨어져 1년 반 만에 되돌아와야 했지만 담당교수는 ‘미스터 김이 최고의 제자였다’고 칭찬해줬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인형극에 담는 선교 메시지
한국으로 되돌아온 김 대표는 경남 양산 산골에 칩거하며 마리오네트 제작에 전념했다. 절치부심, 오직 한 길에 공들이는 시간들이 흘렀고 마침내 완성한 작품을 서울 대학로에 올렸다. 그게 ‘대박’이 났고 김 대표는 “디테일한 연기력이 국내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현재 인형극단 ‘보물’은 김 대표의 가족으로 구성돼있다. 아내, 아들, 며느리가 모두 극단원이다. 마리오네트 공연을 위한 전용 숲 속 공연장을 마련하는 것이 김 대표의 꿈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김 대표가 전용극장을 꿈꾸는 이유는 자신의 인형극에 “메시지를 담고” 싶기 때문이다.
“예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선교극을 만들고 싶다. 전용극장이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안무에서 음악, 인형까지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3년 이상이 걸린다. 힘들더라도 오랫동안 공을 들여 50년, 100년 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척박한 한국교회 현실에서 김 대표의 마리오네트 선교극이 언제 무대에 오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공들이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오랫동안 공들인 김 대표의 마리오네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 몸으로 공연하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믿음은 미래를 앞당겨 누리는 확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 극단 보물의 ‘2017 신나는 예술여행’
극단 보물에서는 ‘2017 신나는 예술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농어촌, 도서산간, 전국 장애인 시설 및 사회복지시설, 군부대, 교정시설 등을 대상으로 한 이 프로그램은 대사가 없는 옴니버스식 넌버벌 인형극으로, 300여 개의 예술단체가 참여해 벌써 3,000여 회의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마리오네트 인형극의 섬세한 동작들을 잘 보여주는 이 공연은 아름다운 발레리나, 색소폰 연주자, 강아지 묘기 등 극단 보물의 마리오네트들이 모두 등장해 이국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마리오네트 인형극의 진수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문의 : 010-3576-0208

김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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