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이 2004년에 감독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보면 십자가에 못 박혀 괴로워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하늘에서 하나님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신 예수님도 힘드셨겠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계셨던 하나님의 마음도 고통스러우셨을 것이다.
십자가형은 모진 고통을 당하면서 서서히 죽이는 당대 가장 잔인한 사형방식이었는데, 로마시대 노예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일으켰던 반란 후 노예군을 진압한 크라수스가 반란의 발상지인 카푸아에서 로마에 이르는 아피아 가도에 6천 명의 살아 있는 노예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달아 죽인 이야기는 유명하다.

복음서에 기록된 기록만으로 예수님의 사인(死因)과 고통을 추정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문제다. 4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은 한밤중에 체포되어 산헤드린 공회와 대제사장 가야바 앞으로 끌려가 뺨을 맞고 폭행을 당한다. 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지쳐 버린 예수님은 다음날 유대 총독 빌라도의 관정으로 호송되어 이른 아침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형을 선고 받는다. 그리고 제3시(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제9시(오후 3시)가 되자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뒤 숨을 거두신다.

십자가형에서 못을 박는 위치는 주요 혈관이 관통하지 않기 때문에 출혈로 사람이 바로 죽지는 않는다. 그리고 출혈도 시간이 지나면 지혈이 된다. 대신 탈진과 탈수, 호흡곤란 등으로 사망하게 되는데 문헌에 의하면 보통 몇 시간에서 며칠, 심지어 일주일을 버틴 죄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6시간 만에 돌아가셨다.
복음서에 보면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해질녘 전까지 희생자들을 빨리 처치하기를 요구한다. 십자가형을 끝내는 평범한 방법은 다리를 꺾는 것이었는데, 다리를 꺾는 행위는 아마도 무릎 뼈를 망치로 깨뜨리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두 강도의 다리를 꺾은 후 그들이 예수님께 왔을 때, 그들은 그것이 불필요함을 안다.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물론 심한 매질을 당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독생자의 고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예수님의 사인(死因)에 대한 의사들의 관심은 사실 끊이질 않는다.
미국 오하이오 주 내과의사 그레그 위트 박사는 “두 팔을 쭉 뻗은 상태에서 손목에 못을 박으면 가슴 근육이 수축, 이완 작용을 할 수 없어 질식사를 한다”고 주장했고, 이태리 투린대 법의학연구소장인 루이지 보로네 교수는 <예수 최후의 날들>이란 저서를 통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질식 증상 등으로 고통을 받긴 했으나, 직접 사인은 ‘관상동맥 혈전증’에 의한 심장마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인보다는 죽음 그 자체일 것이다. 예수님의 사인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그것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종훈
닥터홀 기념 성모안과 원장이자 새로남교회 월간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대학시절부터 성경 속 의학적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과 <성경 속 의학 이야기> 등이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