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온다’는 ‘자서전 쓰기학교’에서 만난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는 코너입니다.

선생님이 주신 시집
책장에서 낡은 시집 한 권을 꺼낸다. 출판한 지 사십 년이 지나 표지를 싼 비닐은 낡아서 벗겨진 채이다. 시집의 발행정보 아래 ‘값 1,500원’이라 적혀 있고, 표지를 열면 면지에 “아무개 군에게”라 쓴 만년필 글씨와 저자의 이름, 쓴 날짜가 남아 있다. 아마도 내가 소유한 첫 시집이면서, 저자의 서명을 받은 첫 책이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내가 다니던, 작은 지방 도시 중학교의 국어선생님이었다. 고향 사람들은 내 이름 ‘명규’를 부를 때 ‘명’자를 ‘맹’자로 발음했는데, 그 ‘맹’자 발음 덕분에 내 별명은 ‘맹물’이 되었다. 그 ‘맹물’이란 별명을 처음 불러주신 이도 시인이던 국어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의 시에는 늘 바다와 물과 구름, 바람, 외로움, 눈물 같은 단어들이 들어 있었으므로 ‘맹물’이란 별명도 선생님의 시어詩語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말했다.
선생님은 구멍가게를 하던 우리 집에 나이 드신 도덕 선생님과 키 작고 못생긴 생물 선생님을 대동하여 가끔 들렀는데, 선생님들은 가게 앞 평상에 앉아 밤늦게까지 소주병을 쌓아가며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많이 웃었으며, 때로는 슬프게 울었다. 술 마시는 인간을 유난히 증오하시는 어머니도 선생님들만큼은 예외로 생각하셨던지 선생님들이 올 때마다 오히려 반겨 맞아주었다. 선생님들은 술기운이 오를 때쯤 노래를 신청하듯 시인 선생님께 시를 낭송하게 했다. 선생님의 시 중에도 가장 유명하고 인기 많은 시는 다른 선생님들도 다들 외고 있었는데,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을 언제나 함께 낭송하는 것으로 선생님의 시낭송 순서를 마무리했다.

대학가요제에서 그 시를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은 대도시 어느 학교의 국어선생님으로 전근을 갔고, 그 뒤로는 큰 백일장이 열릴 때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선생님을 한두 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나도 서울로 이사와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므로 선생님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리고 고향의 공기조차 그립던 어느 겨울날, 선생님의 그 유명한 시를 항구 도시의 어느 대학생 두 남녀가 노래로 불러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보았는데, 나는 그날 선생님을 만난 것처럼 들떠 생방송을 지켜보았다. 그 후 방송을 통해 이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불렸으며 누군가에게는 애창곡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나는 노래방에 가서도 그 노래만큼은 부르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내가 오랫동안 암송해 온 선생님의 시가 도무지 그 노래의 빠른 리듬과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내게 새겨진 시의 정조와 노래의 분위기가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선생님들이 술자리에서 함께 낭송하던 그 마지막 시구조차 그 노래에는 생략되어 있어 대체 이 노래가 그 시를 제대로 반영하였는지 의심스러웠다.
더욱이 대학가요제에서 이 노래가 불릴 때는 작사자가 선생님의 이름이 아닌, 엉뚱한 이름이 버젓이 자막에 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요즘 같으면 사단이 날 일이었으나 그때는 선생님이 작사자의 이름을 되찾는 것으로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아무튼 그 노래가 선생님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지만, 나로선 선생님의 시를 훼손한 노래로 기억에 남았다.

당신을 닮아
“맹물아, 선생님 돌아가셨데이.” 장례식도 한참 지난 뒤에 비로소 받은 부고였다. 그제야 지난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한 자괴감과 송구함이 후회로 밀려왔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도 가끔 시를 낭송했다. 그런 날은 창밖으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거나 바람이 웅웅 부는 날이었다. 우리는 선생님과 시를 공부하기 위해 문예반에 들었다. 아이들은 시집을 읽고, 노트 한 권 가득 시를 베끼거나, 자신의 시를 짓기 시작했으며, 백일장에도 발 도장을 찍어댔다. 그중에는 시인이 된 아이도 있고, 소설가가 된 아이도 있고, 공무원과 평범한 회사원이 된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시를 썼다. 시인은 국어책 안에만 사는 줄 알던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높은 담을 허물어준 셈이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모두들 당신을 닮아 시인이 되게 해준 일이었다.

박명철 기자
자서전 집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아름다운동행 자서전 쓰기학교의 주강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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