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장학클럽 홀씨 고일식 회장

“딸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손님들이 들어온다. 작은 평수의 매장이기에 구경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데도 어찌나 서로 잘 양보해가며 물건을 고르는지. 그렇게 손님들이 한 차례 물건을 사가지고 나가면 또 다른 손님이 들어오고, 복작복작 한마디로 잘 되는 가게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가격과 물건의 종류다. 예를 들어 중고지만 유명 브랜드 외투 한 벌에 만원, 바지는 5천원 싼 가격에 놀라고 옷뿐 아니라 별의별 생활필수품이 마련되어있어 그 종류의 품질과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서초동에 위치한 이 희한한 가게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무리 봐도 그냥 보통 가게와는 다른 ‘당당한 분위기’가 있다.
“저희요? 저희는 형편이 어려운 고등학생들을 위해 1년치 수업료를 장학금으로 전달하고 있는 여성장학클럽 ‘홀씨’입니다.”

홀씨 알뜰매장
언뜻 봐도 화려한 외모에 당당한 말씨를 가진 고일식 회장(남성교회)은 이렇게 설명한다. 월 1만원의 후원금을 내는 370여 명의 회원들이 모여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더 많은 학생들을 돕고자 중고의류 및 물품을 기증받아 판매하고 있는 것. 그러나 이 매장을 월급도 전혀 안 받고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운영한다는 것은 전혀 고상한 일이 아니라 현실이다. 직접 물건을 기증받아 창고와 매장에 정리하고, 먼지와 싸워가며 정리하고 나면 손님들을 응대하는 일부터 운영에 관한 모든 일이 소위 말해 장난이 아니다.
“힘들지요. 그래도 보람됩니다. 그렇게 우리 홀씨가 전해준 장학금이 지난해까지 11년 동안 121명, 1억7천만 원이나 됩니다.”
이밖에도 일일카페를 열어 음식을 판매, 교복비를 지원하기도 하고, 귀고리 만들기 교실을 열어 회원들이 만든 액세서리를 팔기도 한다.
그러나 ‘홀씨’에는 여러 원칙들이 있다. 추천이 들어오면 클럽 장학위원들이 직접 가정방문을 해서 학생과 부모를 만나고 계속해서 격려하며, 장학생 선발 기준에 지역 제한은 없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확고한 학업의지와 품행이 바른 학생’을 선발한다.
또한 매년 12월 열리는 장학금 수여식에 나온 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전달한다. 학생이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장학금을 받아 장학생으로서 살아가고, 후에 장학금을 주는 사람이 되도록 크길 바라는 마음에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가 주는 장학금은 우리의 진액을 모아서 아이들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아도 ‘이것은 그냥 돈이 아니야, 진심이야, 그러니 당당하게 힘내서 살아라’ 하고 저희는 말하는 것이지요.”
이밖에 홀씨 알뜰매장에 기증되는 물건은 그 어떤 것도 회원이라고 해서 먼저 마음대로 사가거나 그냥 가져갈 수 없으며, 모임에서 식사를 하는 비용조차도 클럽 재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일을 하게 된 이유
고 회장이 2006년에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 영월 출신이에요. 아버지가 제 나이 5살 때 세상을 떠나셨어요. 시골에 땅 한 평 없이 어머니와 7남매가 너무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수업료를 못 내 자주 교무실에 불려갔고, 불우이웃돕기 대상 1순위였어요.”
어머니는 중학교에 진학할 즈음 그녀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남의 집 갈래, 아니면 공장 갈래?”
“죽어도 중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입학금과 교복까지 사려면 쌀 한 가마니 값이 필요한데 그 돈이 없으니 갈 수 없었지요. 서울에 가서 그 돈을 벌어오겠다고 했어요. 서울 외숙모 댁에서 끼어 자면서 실밥 따는 일을 했어요. 그렇게 번돈을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중학교에 들어갔지요.”
그러나 학비 내는 날은 그렇게 자주 돌아오고, 힘든 생활은 계속되었다.
“교회 가서 울면서 기도 많이 했어요. 왜 나는 아버지가 없는지, 왜 우리 집은 이런지. 그러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깨달음이 왔어요. ‘아,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구나. 하나님, 저 고등학교 보내주세요. 그리고 이 다음에 나도 꼭 도와주는 사람 되게 해주세요’라고요.”
상고에 진학하고, 직장을 다니게 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 다가왔다.
“제가 공부에 한이 맺혀 있으니 아들에게 심하게 공부를 강요한 거예요.”
청소년이 된 아들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갈등은 극대화 되었고, 그때 고 회장이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어요. ‘하나님, 아들은 당신 손에 맡기겠습니다. 이제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 일하겠습니다’ 그게 홀씨의 시작이었어요.”
아들에 대한 것을 놓으니 아들은 오히려 제자리로 돌아왔고, 지금은 대학을 나와 연기자가 되는 길을 걷고 있다고.

아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만나 설득하면서 후원그룹을 만들었다. 그렇게 모인 첫 홀씨들이 모두 42명이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홀씨라는 이름에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민들레처럼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필요 없는 물품은 전화만 주시면 찾아갈 테니 절대 그냥 버리지 마시고 꼭 기증해주세요. 이번 겨울에 창고에 쌓였던 두꺼운 외투가 다 팔리고 동이 난 상황이라 의류나 가방, 소품, 주방용품, 소가전류 다 좋으니 기증 부탁드립니다.”
사실 인터뷰에 넣을까 고민도 했지만 고 회장은 현재 넉넉한 상황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업의 어려움으로 남편의 사무실 한 방에서 몇 년간 가족이 지내고 있는 것.
그러나 그녀와 남편은 함께 웃으며 이 일을 한다. 당당하다. 돕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최근에는 본격적으로 상담을 전공하며 부모들과 청소년들을 돕는 일도 병행하고 있다.

“결핍이 꼭 나쁜 조건만은 아닙니다. 좋은 조건을 가진 친구들보다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조건을 하나 더 가진 것입니다. 제가 오늘날까지 홀씨라는 예쁜 닉네임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행복할 수 없었고, 즐겁지 않았던 결핍의 조건들을 더 이상 탓하지 않는 순간 ‘감사’가 나를 감쌌고 채워주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눈물 흘리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자신과 같이 어려운 아이를 돕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함께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다른 이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자고 또 다른 홀씨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함께 하지 않을래요? 장학생들을 배출하는 일. 희망의 징검다리가 되어줍시다.”

주소 : 서초구 서초대로40길 77, 02)523-8063, 010-8937-7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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