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鑛夫), 그들의 ‘삶의 처소’는 갱도(坑道)이다. 광석 채굴을 위해 대지 아래로 깊이 들어간다. 이런 까닭에 그들에게 ‘위험’이란 일상(日常)이다. 그럼에도 광부들은 그 ‘위험’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험을 예측하고 그것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치밀한 방어를 한다.
그 방어 가운데 하나는 광부들이 갱도를 들어 갈 때, 반드시 ‘새 한 마리’를 새장에 넣은 후 갖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보면, 땅 속 깊은 갱도는 예측 못할 많은 위험이 있는데 그 가운데 치명적인 것이 지반에서 배출되는 ‘유독가스’이다. 밀폐된 갱도에서 만나는 유출가스는 곧 죽음인 것이다. 그런데 갱도 바닥에서 유출되는 유독가스를 가장 예민하게 인식하는 것이 바로 ‘새’이다. 새는 유출가스를 맡는 즉시 비명을 지르며 죽는다. 새가 죽으면 그 ‘위험’을 감지한 광부들은 급히 갱도에서 철수하여 자신의 생명을 지킨다.
어리석은 자들은 ‘세 가지’를 모른다. 곧 위험한 것, 소중한 것, 필요한 것이다. 특히 어리석은 자는 ‘위험’을 무시한다. 사실 삶에서 무시해도 좋을 만한 작은 위험, 가벼운 위험은 없다. 시인 정현종의 시어(詩語)처럼 삶이란 “그림자에도 불탈 수 있을” 만큼 철저하게 취약하다. 그러니 ‘모든 위험은 모두 위험’하다.
삶을 위험에서 지켜주는 두 가지 처방, 그것은 ‘초심(初心)’과 ‘조심(操心)’이다. 초심은 삶을 맑게 하고 조심은 삶을 위기에서 보호한다.
안경, 그것은 사물이 ‘잘 안보여서’ 쓰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보려고’ 쓰는 것이다. 그래서 탁월한 운전기사는 시력이 그리 나쁘지 않아도 야간 운전시 안경을 착용한다. 예기치 못한 위험의 그 위험을 알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삶의 위험을 경보(警報)해줄 ‘새 한 마리’를 준비한 사람, 그는 참 현명한 사람이다.

김겸섭
성경해석 연구 공동체인 아나톨레와 문학읽기 모임인 레노바레를 만들어 ‘성서와 문학 읽기’ 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 방화동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다. 저서로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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