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비텐베르크 대학교 부속 교회당 정문에 ‘95개조의 논제’라는 제목으로 반박문을 써서 붙이고 이른바 종교개혁(Reformation)을 한 지 정확히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아 유럽과 미국에서는 각종 세미나, 심포지엄 등 학술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으며, 한국교회의 각 교단들과 신학대학들, 언론매체들도 다투어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교회개혁’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
그런데 필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종교개혁’이란 용어를 이제라도 ‘교회개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Reformation’을 일본사람들이 ‘종교개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한국교회도 그대로 답습한 것에 불과하다.
사실 오늘날 서구학자들은 신학 자체를 종교학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많은데다가, 이른바 에큐메니컬 신학 자체가 종교의 신학(Theology of Religions)으로 전락했고,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요즈음 서구의 자유주의 학자들은 기독교나 로마 가톨릭이나 무슬림이나 불교 모두 종교이며 궁극적으로 꼭 같다고 하는 주장이 대세이다.
16세기 개혁자들은 ‘교회를 개혁’한 것이지, 종교를 개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10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떠나서 바빌론 종교와 태양신 숭배사상으로 완전히 오염되고 거짓된 종교로 전락된 가톨릭교회를 성경적·사도적 교회로 회복시킨 것이다. 복음을 회복하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며 참된 교회를 회복한 것이다.
실제로 16세기 요한 칼빈을 소개하는 글에는 ‘교회의 개혁자 요한 칼빈’(IEAN CALVIN, Reformateur de L’Eglise)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다시 말씀으로 개혁해야
교회 역사학자 필립 샤프(Phillip Schaff)는 말하기를 “루터는 단단한 바위산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한 사람이라면 칼빈은 루터가 깬 바위에 글을 새긴 사람”이라고 했는데,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1985년에 세계 교회에 가장 먼저 세워진 한국칼빈주의연구원과 칼빈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50년 동안 칼빈과 칼빈주의 자료를 찾기에 동분서주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칼빈박물관을 세운 것은 칼빈 개인의 위대성을 예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도 병약하고 고독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도구로 사용하셨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라고 결론짓는다.
교회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번영신학과 종교다원주의 사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이고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교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참에 우리가 쓰는 용어도 ‘종교개혁’에서 ‘교회개혁’으로 바꾸었으면 한다.

정성구
40년 동안 총신대학교와 대신대학교에서 칼빈주의와 실천신학을 가르쳤으며, 총신대학교와 대신대학교의 총장과 대학원장으로 일했다. 현재는 한국칼빈주의연구원 원장으로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운동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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