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나무교회 원로목사와 후임목사의 ‘인도 여행’

01
“이제 갈 사람은 가고 / 올 사람은 오고 / 세워야 할 사람은 세워 / 큰나무교회의 새 장을 열어야 합니다. / 기대해주십시오. / 격려해주십시오. / 축하해주십시오. / 그리고 기도해주십시오.”
2011년 2월 26일, 임종수 목사는 큰나무교회에서의 33년 목회를 마감하면서 이취임예배의 초대장에다 그렇게 썼다. 그리고 후임 박명룡 목사를 맞았다. 떠나는 이로서 그는 나름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최선을 다했다’는 후련함보다 힘든 길을 가야 할 후임자를 향한 안타까움이 컸다.
이처럼 세상에 드러내놓을 만한 좋은 대물림을 이룬 큰나무교회였으나 그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큰나무교회는 게다가 전임자와 후임자의 성향이나 생각의 차이가 여러모로 컸다. 그러다 보니 새 담임목사를 맞고 원로목사를 떠나보내는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잡음들이 들렸다. 허기야 우리는 많은 교회들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고, 하도 잦은 일이라 차라리 인지상정(人之常情)인 양 여기더라도 도리가 없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고 보면 문제는 오히려 이런 잡음을 다스려서, 전임자의 전통과 후임자의 새로움을 잘 연결해주는 ‘사후의 노력’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큰나무교회의 ‘큰나무다움’은 어쩌면 이런 사후의 노력에서 더 값이 있어 보인다. 원로목사와 새 담임목사가 이취임 후 6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떠난 ‘인도여행’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작년 11월 21일부터 29일까지 떠나온 두 사람의 ‘선교여행’은 원로목사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그래서인지 ‘선교여행’ 그 이상의 의미들이 두 사람의 여행 배경을 이루었다.

02
인도 중서부에 위치한 뭄바이는 매연이 심하고, 우리나라 여름 날씨처럼 후덥지근했다. 추수감사절 행사 등으로 지친 박 목사는 긴장을 놓은 탓인지 몸살감기가 심했다. 열이 나고 목소리가 잠겼다. 이튿날 인도 현지 사역자들에게 강의하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현지 선교사의 집에 묵을 때 임 목사는 선교사에게 부탁하여 “따끈한 차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연배로만 보면 자식뻘인 박 목사를 바라보는 임 목사는 근심이 깊어 보였다.
이튿날 박 목사의 몸 상태는 다행히 강의를 할 만큼 호전되었다. 현지 사역자들은 박 목사의 강의에 귀기울이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길어질 만큼 누가 보더라도 인기 만점의 강의였다. 덕분에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박 목사가 그렇게 박수를 받을 때 곁에서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임 목사였다.
뭄바이 지역에서 18년 동안 힘들게 선교사역을 해 온 현지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은 뒤, 임 목사는 큰나무교회 개척을 할 때의 고단한 세월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대문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는 거야. 그냥 걸어가려고 나오는데 아내가 500원 짜리 지폐 한 장을 주더라고.”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가 이어질 때 아들 같은 연배의 박 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같은 임 목사의 이야기에 이어 박 목사도 미국에서 유학할 때의 이야기를 했다. 새벽 다섯 시에 잠을 깨면 밤늦게까지 다섯 가지나 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배를 곯으며 공부했다. 이번에는 아버지 같은 임 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03
인도의 한 농아학교에서 머물 때 이 학교의 마당 가운데에 활짝 핀 꽃나무가 있었다. 그 꽃나무의 사연이 감동적이었다.
캐나다의 한 처녀가 인도에 와서 독신으로 고아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흰색 피부의 그녀가 키운 인도의 딸들이 자라서 이제는 ‘어머니’가 세운 학교의 교장으로 훌륭하게 일하고 있다. 그 캐나다인 어머니가 딸들에게 “우리 가족의 꽃이야”라며 심은 꽃나무였다는 것이다. 중국산 인동초(combretum indicum)인 이 나무에서는 흰색과 붉은색의 꽃이 덩굴을 이루어 함께 피었다. 마치 캐나다인과 인도인이 한 가족을 이뤄 아름다운 향기를 만들어낸, 그녀의 가족 같았다. 임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 꽃의 사진과 사연을 적어 올렸다. 아마 그 다른 색깔의 꽃이 한 가지에 아름답게 피어난 모습이 특별한 감동을 자아낸 듯했다.
열흘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낸 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두 사람은 갈 때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 목사의 감기몸살은 거의 낳았고, 깊은 잠도 들었다. 겨울로 접어든 서울이 가까워질 무렵 임 목사는 잠든 박 목사를 위해 무릎담요를 덮어주었다.
어쩌면 큰나무교회에도 올 여름 쯤엔 인도의 그 농아학교에서 본, 어느 캐나다 여인과 인도 아이들의 ‘가족 꽃’처럼 흰색과 붉은색의 꽃이 함께 덩굴지어 향기를 풍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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