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리 찬양사역자와 어머니 이연주 권사

미국의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따님이 학교에 오면 특이한 패턴으로 걷는다고. 엄마는 학교를 찾아가 뒤에서 아이의 걸음을 확인했다. 모퉁이를 돌 때면 꼭 멈춰 서서 제자리 걸음을 걸은 후에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선생님 말이 맞았다. 인정하기는 정말 싫었지만 자폐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딸을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이전에 했던 것처럼 계속 찾아나갔다. 돌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딸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나섰다. 노래를 가르쳤고, 그림을 배우게 하고 함께 산타모니카 칼리지에 다녔다. 갇혀진 세상에서 살지 않도록 끊임없이 딸에게 세상을 소개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가르쳤다. 그 결과 딸은 지금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역자의 삶을 살고 있다. 딸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 한편이 저리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폐장애 알게 되어
최근 전시회와 찬양집회 등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재미 찬양사역자 마가렛 리(46)와 이연주 권사(해돋는교회·84)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마가렛 아빠가 카이스트를 세우는 데 일조한 이남기 박사예요. 저도 의상학과 교수였고요. 지금 미국에서 의사와 사업가가 된 아들 둘은 천재라는 평가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런 우리 가정에 마가렛이 태어났으니 얼마나 저희가 기뻤겠어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열심히 살아온 가정에 막내딸로 태어난 마가렛이 처음부터 자폐증세를 보인 것은 아니다. 한국을 오가며 적응이 안 되어 발달장애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는 미국학교의 의견도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자폐장애가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죽고 싶었어요. 사춘기를 맞아 마가렛의 증세는 너무나 심해졌고, 함께 이 세상을 떠나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지요. 산 것이 하나님 은혜예요.”
“그때 친구가 함께 교회 부흥회에 가자고 했어요. 교회 2층 구석에 앉아 있는데 목사님께서 마태복음 15장에서 귀신 들린 딸을 가진 가나안 여인이 소리를 질러 딸을 살려달라고 도움을 구한 이야기를 하셨지요. 자신을 개라고 여겨도 좋으니 우리 딸을 구해달라고 하는 엄마의 이야기. 제가 너무나 교만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집에 돌아가 새벽 6시까지 마태복음을 읽었어요. 이후 세상이 달라보였어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딸을 부끄럽게 여겼어요. 이제 제가 겸손해질 테니 우리 딸을 고쳐주시고, 도와주세요.’

찬양과 칭찬
부끄러웠기 때문에 숨겨 키운 딸이었다. 사람들도 찾아오지 않게 했었던 집이었다. 그런데 그런 가정이 변한 것이다. 이후 대학에서 성악을 배우고, 2004년 8월에는 미국 윌셔연합감리교회에서 가수 윤형주 장로와 함께 콘서트를 열고, 같은 해 올림픽장로교회에서 라디오서울 진행자 노형건 씨와 함께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찬양사역 활동을 시작했다.
“완벽하게 부르지 못하면 다시 1절부터 시작하는 딸이었어요.
그걸 고치려고 9개월 걸렸지요. 콘서트 당일 구두 때문에 노래 못 하겠다고 하더군요. 기도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아이가 무대에 섰는데 노래가 끝난 후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렸어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많은 관객들이 마가렛의 찬양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콘서트 이후 마가렛을 알아보게 된 사람들은 마가렛의 손을 붙잡고 칭찬을 했다. 마가렛은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고마워요.”
“마가렛이 그때부터 웃기 시작했어요. 미소를 짓기 시작했어요.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갖게 되었지요. 그때 깨달았어요. 제가 아이를 칭찬하며 키우지 않았음을, 칭찬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음을. 그래서 지금은 간증 기회가 있으면 아이들을 꼭 칭찬해 주시라고 부모님들께 말씀드려요.”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뿐만이 아니다. ‘독도화가’로 알려진 재미화가 권용섭 화백으로부터 수묵화를 배우게 되었는데, 창의력과 집중력을 보였고, 이후 계속 그림을 그려 이번 방문에서도 권화백과 함께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독도 관련 작품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마가렛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편하게 웃으며 상했던 마음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음을 느낍니다.”
또한 지난해 미주 중앙일보에서 주최한 ‘원더플 마미’ 시상식 때 마가렛의 글 ‘우리 엄마가 아름다운 이유’가 1등상을 받기도 했다(본지 190호(2015년 9월 6일자) 게재). 시상식에서 마가렛이 부른 노래는 ‘어머니’(Mother of Mine).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마가렛이 부르면 다 좋지만 그 중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란 찬양은 제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마가렛이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어요. 하나님께서 마치 우리 가족을 버리신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가렛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시며 동시에 저도 축복하신 줄 이제는 믿습니다. 저 사람 되라고 마가렛을 허락해 주신 거예요. 물론 지금 이 순간에라도 마가렛이 낫기를 바라지만 바울도 하나님께서 가시를 안 고쳐주셨잖아요. 그러니까 마가렛에게도 그런 뜻이 있으시겠지요.”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계속해서 찬양사역과 그림 작업을 하겠다는 마가렛. 인터뷰를 마무리 하려고 하자, 기자에게 마가렛은 기도를 부탁해 왔다.
“제가 교회에서 헌금송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함께 눈을 감고 기도하던 그 순간이 묵직하게 마음에 남았다. 마가렛 보다 하루만 더 오래 사는 것이 기도제목이고, 나중에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공부를 시키고 있다는 이 권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만남의 마침표를 잘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마가렛을 통한 위로가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또 하나의 열매’를 맺는 계획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엄마는 마가렛을 너무 사랑합니다.
엄마는 엄마 것을 다 버리고
마가렛 고치려고 많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엄마의 기도가
마가렛을 하나님 찬양하게 했습니다.

엄마는 내 옷도 다 만들어 주십니다.
음악회에 입은 ‘조수미 드레스’도
엄마가 직접 만들어 주십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옷은 편안하고, 따뜻하고 이쁩니다.
엄마는 매일 울면서 기도합니다.
부족한 나를 하나님께 바치고 싶다고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엄마는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찬송을 들으면
너무 많이 웁니다.
자폐우도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주고 싶다고 기도합니다.
나도 우리 엄마 소망대로
‘또 하나의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하여
찬송가 많이 부르겠습니다.

엄마, 마가렛을 키워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가 오래 오래 제 곁에서 함께 사시기를 바래요.
저는 혼자 설 수 없어요.
항상 곁에서 기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세요.
그래서 마가렛이 하나님 찬양할 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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