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새소리는 마치 천국 문빗장 틈으로
삐져나온 소리랄까
아침 햇살은 마치 천국 문빗장 틈으로
새어나온 빛이랄까
우리의 노래가 아침 새소리 같았으면
우리의 예배가 아침 햇살 같았으면
우리의 삶이 아침 풍경 같았으면
(‘아침 풍경’-좋은날풍경)

이른 아침 국도를 달리는 동안 지상의 봄은 마치 이 땅에서 천상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경남 합천의 한 시골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기타를 메고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 몇 분이 보였습니다. 목례를 하고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눈부터 감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배당 문이 병원 응급실 문처럼 확 열리더니 한 남자가 할머니를 업고 예배당에 들어왔습니다. 남자는 이마에 맺힌 땀을 크게 한 번 훔치더니 다음 일에 늦은 듯이 황급히 나갔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셨습니다.
‘아, 부지런하시다. 성도를 업고 다니시다니…’
시골교회다 보니 목사님 혼자 예배를 위해 분주하셨던 것입니다. 단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목사님. 이마엔 땀이, 어깨에는 김이 오르는 목사님의 뒷모습에서 고마움과 감사가 성급하다싶을 만큼 제 마음에 차올랐습니다.

다만 섬기고 사랑할 뿐
차임벨이 울렸습니다. 그 흔한 반주기도 없이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창틀 너머로 맑은 새소리가 들려와 천상의 반주가 따로 없구나 싶었습니다. 설교 전에 제 순서가 되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제 등 뒤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목사님의 눈물. 이 곳 시골교회를 섬기시면서 얼마나 많은 애환이 있으실까….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주신 소명 이루소서.”
목사님의 설교는 원고가 아니라 삶 자체의 이야기들로 생생했습니다. 생수의 강이 흘렀습니다. 노트에 받아 적기에도 바쁠 만큼 펜을 놓지 못했습니다.
‘이름 없이 사는 것이 명예요, 빛 없이 사는 것이 영광이라. 다만 섬길 뿐, 다만 사랑할 뿐.’

예배 후 목사님은 할머니를 업고 식당으로 모셔 드렸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 다시 할머니를 업고 봉고차로, 그리고 할머니 또 업고 댁으로, 그리고 교회로 오셨습니다. 그제야 큰 숨을 내 쉬시며 여유를 차리시고는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회를 떠나올 때 목사님은 고춧가루 한 자루와 두릅나물을 한 자루를 주셨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자동차 백미러로 보이는 흔드시는 배웅의 손에서도 배어있는 미소가 보였습니다.
그래도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이런 말 저런 말을 많이 듣는 시국이어도 한국 교회는 소망이 있다고, 아이의 우김처럼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그런 소망을 보고 싶다면 낮고 작고 가난한 교회로 가보라고, 거기 숨겨진 듯 드러나지 않는 이들의 이름 없이 빛 없이 섬기는 사랑하는 모습을 보라고, 팔 다리 걷어 가난한 이들과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까맣게 그을린 얼굴들을 보라고, 땀방울 뚝뚝 떨어지는 진솔한 삶의 등걸에 희망은 감춰져 있다고 확성기를 대고 세상에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황혼이 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할머니를 업은 목사님의 뒷모습을 생각하니 제 입에서 눈물 같은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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