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마사이족 김만호 선교사 부부

“저는 인생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생각했습니다. 30세까지는 공부나 취업, 결혼 등 자신을 위해서 노력하며 살고, 60세까지는 자녀 뒷바라지 등 가족을 위해서 살고, 그리고 60세부터는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 일만 하고요.”
최근 선교사 파송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탄자니아 평신도 선교사 김만호 장로(72)와 심혜옥 권사(70)가 말한다. 은퇴 후 탄자니아로 가 마사이족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다 선교사 정년이 끝나 이번에 기흥지구촌교회로부터 다시 파송을 받게 된 것.
“일반적으로 선교사 파송 받을 때에 파송일자로부터 보통 2년까지 파송한다고 표시되는데 저는 이번에 ‘주님 부르실 그 때까지’ 보장 받는 파송장을 받았답니다.
사역에만 전념할 수가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은퇴 후 탄자니아 선교 결심
김만호 선교사와 심혜옥 선교사는 은퇴한 후 탄자니아로 들어갔다. 수원제일교회 장로 시절, 선교사 정착을 도우려고 탄자니아로 동행했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2005년 5월 가족회의를 열었다. 세 딸들 중 막내딸이 말했다.
“아빠, 자랑스러워요. 지금까지 공부시켜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저희는 걱정 말고 가세요.”
그해 11월 탄자니아로 들어갔다. 그러나 언어가 유창한 것도 아니고, 소위 말해 젊은 사람도 아닌 자신들을 그리 반겨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찾았습니다. 화장실 청소부터 했습니다. 문을 고치고, 여자화장실은 수세식으로 만들어주고. 그랬더니 동네에서 보는 눈이 달라지고 먼저 마음 문을 열고 다가오더라고요.”
파송받기 전 김 선교사 부부에게는 마태복음 20장 28절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이 가슴에 새겨져 있었다. 그 말씀 가지고 한국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사이족을 섬기러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이기에 힘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변하다
마음 문이 열리자 찾아온 아이들에게 노래도 가르치고 성경도 가르쳤다. 성가대를 만들고, 많이많이 칭찬해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전도를 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아이들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성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혼을 해야 하는 마사이족.
“한 아이는 70세 노인의 세 번째 아내로 시집을 가야 할 처지에 공부하고 예수 믿겠다고 해서 아버지에게 기둥에 묶여 졸도할 정도로 매를 맞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 아이가 포기를 안 하고 버티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 선교사의 눈에는 ‘아비의 눈물’이 순간 맺힌다. 어떻게 참았니 하고 묻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보면 예수님도 매 맞으시잖아요. 그것 생각하면서 참았어요.”
그렇게 버틴 아이는 지금 한국의 한 구호단체와 연결되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사이족은 일부다처제입니다. 행복이 깨진 사람들이에요.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인데 마사이족은 소와 돈이 다예요. 뿐만 아니라 성인식이 시작되는 기간이 되면 영적으로도 피폐하게 되지요. 교회가 텅 비더라고요.”
김 선교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놀라웠다. 마사이족 성인식이 7년 주기로 있는데, 여성의 경우 불법 할례가 이루어지며, 남성의 경우에도 소 피에 우유와 술을 섞어 마신 후 아내를 공유해도 될 만큼 서로에게 협력하겠다는 그런 맹세를 하고 6개월 동안 공동생활을 한다고.
비어있는 교회를 보며 낙심해 있자 매를 맞아가며 신앙을 지켰던 아이, 우펜도가 다가와 ‘힘내라’며 위로를 건넸다.
“선교사님, 우리 상황이 예전보다 나아요. 마사이가 변하고 있어요. 분명히 성인식도 계속 약화될 거예요. 그러니까 힘내세요. 우리를 도와주셔야 해요.”

사랑의 기적
김만호 선교사와 심혜옥 선교사는 어딜 가든 함께 움직인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 심 선교사와 동행하기 위해 속도를 조절한다. 그렇게 함께였기에 2년 전 막내딸인 김나연 씨가 갑자기 폐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도 버틸 수 있었다.
“막내딸이 3살 때 2층 창문에서 떨어졌어요. 죽거나 장애가 올 상황이었는데 아내가 기도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당신이 교회 나가야 우리 애가 산다’고 하더군요. 그 길로 교회를 나갔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뜨겁게 만났지요. 이제 생각해보니 우리 나연이가 절 살리고 떠났네요.”
장례를 마치고 다시 탄자니아로 들어가자 한 남자가 찾아왔다. 자녀가 죽어서 이제는 안 돌아올 줄 알았는데 돌아왔다고, 선물로 염소를 주고 갔다. 또한 멀리 이사 갔던 한 할머니는 닭 두 마리를 들고 그들을 찾아왔다. 그렇게 인종을 뛰어넘어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는 가족이 되어갔다.
그동안을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위로와 사랑을 전해주는 이들을 붙여주셨다.
2008년 일모리조 지역에 엔요라타교회를 짓고 나니 동네 주부들이 유치원을 세워달라고 요청을 했고, 시간이 흘러 1회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그 아이들 사진과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페이스북 친구 중 한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 약혼자와 함께 아이들에게 교복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50명의 아이들이 교복이라는 것을 난생 처음 입어보게 되었고, 아예 그 여성은 약혼자와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을 탄자니아로 오기도 했다. 그리고 유치원 아이들을 위한 영상교육에 써달라고 42인치 텔레비전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현지인 사역자 미라우 전도사가 피부암으로 고통 받는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리자 한 번도 만나지 않은 한 페친이 500만원의 수술비를 보내주기도 했다.
막내딸도 죽기 두 달 전에 5백만원 적금을 주고 갔다.
“마사이족을 위해 방앗간을 만들었는데 기계 살 돈이 모자랐어요. 딸이 주고 간 돈으로 샀어요. 앞으로 도서관도 만들고 아이들 책상과 의자도 마련해 줄 거예요. 힘이 다 빠져서 사역 못 하게 되는 그 순간까지 계속 할 거예요.”
김만호 선교사가 마사이족 노인들에게 꼭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저는 황혼이 새벽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태어날 때보다 저물 때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건 이제부터라도 예수 믿고 천국에 같이 갑시다.”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 탄자니아에서 오늘도 새벽보다 더 아름다운 황혼의 인생을 살아가는 김만호·심혜옥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소망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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