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도약기를 맞이한 제1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교장

일하기 싫은 자 먹지도 마라(데살로니가후서 3:10). 한손에는 성경, 한손에는 호미. 그뿐인가, 치약은 3mm, 비누질은 딱 3번만 등 요즘 젊은 세대에겐 전혀 불가사의할 것 같은 정신교육과 실천운동을 펼쳐온 가나안농군학교. 특별히 가나안정신의 태동지로서 사명을 다해온 제1가나안농군학교가 하남시대 60년을 마감하고 새롭게 양평시대를 연다. 9월 개교를 앞두고 분주한 현장을 찾았다.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1960년대 한국은 에티오피아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못 사는 나라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을 타개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딱히 출구가 보이지 않던 그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서른 명 넘는 정부 고위관료들과 함께 가나안농군학교를 찾는다. 김용기 장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내는데 토대가 된 새마을운동이 탄생한다.

새로운 가나안, 양평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옥현리 산기슭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 제1가나안농군학교. 보금자리 주택사업의 시범지구에 포함되면서 정든 땅 하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사십 년 넘게 그린벨트로 묶였던 땅의 보상금으로는 마땅히 이전할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양평군수가 선거공약으로 가나안농군학교 유치를 내걸었다.
그로부터 4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9월 개교를 눈앞에 두고 분주한 모습이다. 왜 안 그럴까.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갈고 닦아온 하남과 비교할 수 없이 할 일이 태산일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마감공사가 채 끝나지 않은 건물들 안에는 하남에서 사용하던 가구며 집기들이 가득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절약을 실천하는 게 가나안정신의 기본이니 당연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불멸의 시대정신, 가나안의 가르침
어떤 사람들은 김 교장에게 묻는다, 21세기 하이테크시대 중심에 서있는 우리에게 농군학교가 아직도 필요하냐고.
“그러니까 더 필요하죠. 풍요로움을 넘어 지나친 물질주의, 팽배해진 경쟁의식 속에서 온갖 병폐가 나타나고 있잖아요. 사고는 왜 이리 많고 또 사회는 왜 불안할까요.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은가 생각해봐야죠.”
그는 모든 문제의 근원이 ‘정신’이라 했다. 정신이 변화되면 만사해결이라는 뜻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렇다. 가나안농군학교가 줄기차게 주장해 온 ‘일하기 싫은 자 먹지도 마라’를 우리에게 적용해 보았다. 학생이 공부하지 않으면 먹지도 마라, 교사가 가르치지 않으면 먹지도 마라, 운동선수가 운동하지 않으면 먹지도 마라…
우리 사회에 ‘감동’이 사라진 이유, 그것이야말로 맡은 바를 마땅히 이루어내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병폐라고도 했다. 감동은 정신이 변화하여 각자의 몫을 다해낼 때, 아니 노력할 때 저절로 생겨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심은 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심은 양심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했다. 자기 몫을 다하는 게 양심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가나안농군학교 과정이 힘들 것 같지만 어린이들의 변화는 즉각 일어납니다. 처음엔 투덜거리며 오지만 갈 때는 좋아하며 갑니다. 왜 그럴까요, 어린이들의 양심 크기가 어른 보다 크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양심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아세요? 효심이에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양심은 곧 효심
양심은 곧 효심이라는 김 교장의 말은 언뜻 비약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개척정신을 김평일 교장의 아버지 김용기 장로는 강력하게 가르쳤다. 결과, 김 교장을 비롯한 5남매는 모두 아버지의 유지를 따랐다. 자식들의 성품이 유해서가 아니다. 옳은 것을 강력하게 가르친 아버지에게 감동하여 양심이 시키는 대로 대물림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효심교육에는 부모의 양심교육이 선결조건이기도 하다. 부모가 ‘하면’ 자녀도 ‘한다’.
가난을 넘어 정신을 일깨울 가나안농군학교
2014년 현재, 가나안농군학교를 다녀간 사람은 73만 명이 넘었고, 국내를 비롯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로 가나안정신이 퍼져나갔다. 그들이 배워간 가나안정신은 안 쓰고 안 먹는 게 아니라, 적당히 쓰고 적당히 먹는 것이다.
제2의 도약을 앞둔 제1가나안농군학교에게는 시급한 기도 제목이 있다. 준공허가를 받으려면 길을 닦아야 하는데, 폭 6m의 사도(私道)를 포장하기 위한 4~5억 원의 자금이 긴급하게 필요하다.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한 상황. 9월 첫 신입생들을 받을 때까지 문제없이 준공허가를 받아서 가나안정신이 더 좋은 우리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소망해 본다.


* 가나안 농군학교 개척자 김용기 장로

일가 김용기는 1909년 경기도 남양주 출생으로 일제강점기에 성장하여 23세에 “조국이여 안심하라”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고향인 봉안에서 이상촌건설을 통한 농촌부흥운동을 시작으로 개척의 삶을 살았다. 1979년 강원도 원주(신림)에 제2농군학교를 개척했고, 그곳에서 1988년에 소천했다.
성경의 진리를 철저하게 행동으로 옮기고자 했던 일가 김용기의 실천적인 모습은 많은 이들을 감화시켰으며, 여러 차례의 황무지 개척으로 농촌이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잘 살 수 있다는 모델을 보여주었다.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을 하다가 투옥되기도 하는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올바른 정신만이 올바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참 살길에 대한 신념이 오히려 굳건해 지는 계기가 되었다.
농촌개척과 사회개혁운동에 평생을 바친 그는 농촌의 자립과 성장 그리고 사회 전반의 의식혁신에 큰 기여를 했으며, 가나안농군학교, 가나안 신협, 가나안교회를 설립하였다. 그의 정신과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많은 이들이 김용기의 사상(복민사상)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후진들이 일가기념재단을 설립운영하고, 지금도 사회 곳곳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원영선 객원기자

서울여대를 졸업하고 출판사와 광고대행사에서 일을 했다. 이후 방송작가로 변신, EBS, 기독교TV, KBS, CGN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베테랑 방송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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