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야!
대학교를 졸업하며 커뮤니케이션 전공을 따라 기자를 해야 하나 했는데, 신학대학원을 가겠다고 해서 “좀 더 생각해보라”고 붙잡았던 때가 기억난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앉아서 숙제하는 것보다 함께 어울려 사는 얘기 나누길 좋아하는 네가 많은 과목의 신학대학원 과정을 마쳐 가는 게 감사할 뿐이다.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지?
학생 사역에 열심을 내는 모습을 보며 격려해 주어야 하는데 엄마는 기쁘면서도 공부에 지장이 가는 것 같아 늘 걱정의 말을 많이 했지.
이번에도 히브리어, 헬라어 시험과 과제물 마칠 때까지 마음 졸이며 연락도 못하다 “다 했다”는 네 전화받고 기분이 ‘up’됐지. “주님이 시작하신 일이니, 끝까지 잘 이끄실텐데…
올해는 새로운 교회에서 아이들과 다시 사귀고 사역을 시작해야하니 마음이 얼마나 분주하겠어.
지난번에 인사하러 갔을 때 예배 분위기가 잡혀 있지 않다고 했었지. 아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찬양의 가사를 보느라고 앞에 집중이 안 되더라고…. 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 표정이라고. 이제 그 안에서 새롭게 가르쳐야 할 예배 자세와 성경 말씀의 중요성, 그리고 주님과의 연결점을 함께 찾아가야 하겠구나.
이제 조금만 더 인내하며 공부하면 실컷 일할 수 있는 날이 온다.
그런 너와 어울려 행복하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갈 사람을 위해 기도하자.
맑은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예쁜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늘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엄마가.


사랑하는 슬아!
다시 새해 편지를 쓰게 되었구나.
늘 어리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염려를 하며 살아왔는데 이젠 사회인으로 몇 해째가 되니 더 이상 어린 나이로 인한 지나친 생각은 안 할란다. 엄마는 20대 중반까지 그리 성실하게 살지 못했는데 슬이는 제 몫을 잘해주어서 기특하고, 독립적으로 생활을 잘 관리하는 걸 볼 때 참 감사하다. 지난번에 사랑니를 뽑아야 했을 때, 시간을 줄이겠다고 전신마취를 하고 3개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걸 보고 놀랐다. 보호자도 없이…. 늦은 시간까지 연락이 안돼 엄마는 여기서 몸살을 앓으며 조바심을 내고 있었는데…. 그래, 엄마는 곁에 없었지만 주님이 옆에 계셨지. 사랑니 발치가 20대에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니 시원하게 문 하나를 지나간 거다.
문 얘기를 하니까 사춘기 때의 네 시(poem)가 생각난다.

인생(life)은 문을 통과해 가는 것
하나를 열고 가면 다른 문이 기다린다.
그 문을 지나면 또 다른 문, 이어지는 크고 작은 문들…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문을 열어야 하는 걸까.

엄마는 이 시를 발견하고 가슴이 시렸다. 열세 살 아이가 벌써 삶이 힘들어서 이런 시를 썼나, 아님 시험을 준비해 열심히 보고 나면 바로 다음 시험이 이어져 한 말일까.
살면서 우린 그때마다 필요한 과제를 하나씩 해나가고 또 하는 것이니 너무도 적절한 표현을 한 것이었지. 지금 덧붙여 말하면 “해야 한다”는 책임에다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더하면 그런 삶에 기쁨이 생긴다는 거야.
얼마 전 통화에서 ‘약속을 곧잘 변경하는 친구’에 대한 얘길 나눴었지?
그때 엄마가 그런 상황을 분석하려 하자 너는 “너무 깊이 생각할 일이 아니라면서 그럴 때는 변경하기 위해 겪을 마음을 헤아리는 거”라고 했지. 그렇지만 너의 그런 친구가 ‘네가 힘들다’고 하면 바로 와 줄 사람이라고. 엄마는 그 말을 들으며 너의 쿨(cool)함에 놀랐고, 평소에 왜 그런 비상시를 염두에 두고 사는지 생각하게 되더라. 아마 일찍 객지 생활을 하다 보니 그런 변수(changable situation)를 꼽고 살아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평안을 기도하게 되더라. 그러고 보니 어려운 날들이 많이 지나갔네.
새해, 이젠 ‘결혼’을 얘기해도 그리 어색한 나이가 아니다. 그 말은 남자 친구를 가볍게 만날 수 없다는 말이야. 주의 인도하심에 우리가 잘 맞춰가도록 지혜를 구하자. 어떤 엄마도 딸의 사윗감을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그것도 기도해야지. 기쁘게 만나게 해달라고.
새해니까 엄마가 몇 가지를 정리해서 말할게.
* 너의 몸은 하나님이 계시는 귀한 몸이니 건강하고 아름답게 유지해라.
*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앉아만 있지 말고 많이 움직이며 하도록.
* 교회에서 봉사할 일을 찾아 봐야지.
참, 지난 아빠 생일에 ‘날아온 케이크’에 놀랬다. 필요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선물로 작은 감동을 주는 딸, 고맙다.

올해도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하며 엄마가.

80년대 크리스챤신문과 기독공보의 기자로 한국교회 현장을 뛰었다. 그리고 유학하는 남편을 따라 영국과 미국에서,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 목회자의 아내로 살며 아름다운동행에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글을 써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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