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타임’과 ‘열한시’

문화계의 화제상품 ‘시간성’
요즘 문화계 화제의 상품은 바로 ‘시간성’입니다. 장안의 화제 드라마는 단연 ‘응답하라 1994’고, 가요계에서도 레트로 장르라고 불리는 복고 음악이 뜨고 있어요.
사실, 현실의 삶이 어려울수록 대중은 과거 혹은 미래로 도망가려 합니다. 특히 ‘추억 팔이’가 뜨고 있다는 것은 지금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증이기도 해요. 옛날이 좋았다며, 과거 시절을 마치 유토피아인 것처럼 포장합니다. 한 발 더 나아가 현실의 고통스러운 삶이 지속된 미래는 암울할 것이라고 예상해요. 디스토피아란 거죠.
최근 개봉한 ‘열한시’와 ‘어바웃 타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열한시’는 미래로 가서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미리 목격하지요. 반면에 ‘어바웃 타임’은 지나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미 벌어졌던 사건을 조금씩 비틀어 놓습니다. 전자가 시간 패러독스를 활용한 전형적인 SF 스릴러라면, 후자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만든 판타지에 가까운 로맨틱 멜로드라마예요.

미래 알면 다쳐! ‘열한시’
먼저 ‘열한시’.
‘트로츠키 프로젝트’라는 미래로의 시간이동 프로젝트를 연구해온 우석이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자 러시아 기업은 투자 중단을 통보합니다. 초조해진 우석과 그의 동료는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타임머신에 올라타요. 오전 11시에 출발한 타임머신은 24시간 후의 11시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마주한 건 폭발 직전의 연구소와 정체불명의 괴한. 현재로 돌아온 우석은 미래에서 가져온 CCTV 파일을 분석해 다음날 벌어질 폭발을 막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진행될수록 일은 점점 더 꼬여만 가요.
‘열한시’ 속 인물들은 미래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반신 마비인 러시아 기업주는 미래에 자신을 고쳐줄 기술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투자한 것이고, 우석의 동료들은 미래에 펼쳐질 달콤한 사랑의 결실을 기대합니다. 우석 또한 암으로 죽었다던 아내의 치료약을 미래에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연구를 진행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좀 이상해요. 이미 우석의 아내는 죽었는데 미래로 가서 치료약을 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내와 관련하여 뭔가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먼 미래로 도망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그런데 그 장밋빛 ‘미래’가 일순간 악몽으로 바뀝니다. 영화는 우석의 부하동료 입을 빌려 복선을 깔아놓지요. “미리 알려고 하면 다쳐!” 그래요. 영화는 미래를 목도한 자들의 불행을 보여줍니다. 이미 정해졌는데 뭘 어쩐다는 걸까요? 그들이 사력을 다해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막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연구를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갔다 왔던 미래는 미래가 아니란 거죠. 그러니 영화 속 인물들의 이성은 마비되고, 광기만이 흐릅니다.

‘어바웃 타임’ 과거를 과거로
21세가 되던 날, 주인공 팀 레이크는 아버지로부터 레이크 가문 남자들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비밀을 듣습니다.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팀은 사랑스러운 메리와 만나면서 그녀와 맺어지기 위해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요.
여기까지 들어보면 시간여행을 활용한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물 같습니다. 그러나 영화 중간쯤 되면, 팀은 이미 사랑도 쟁취하고 결혼도 하고 귀여운 2세까지 가지게 됩니다. 관객이 기대했던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난 상황이에요. 그런데 그때 영화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어바웃 타임’에서 강조하는 과거는, 현재를 바꿀 기회라는 틀 이전에 추억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현재를 바꾸기 위해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요. 현재의 어그러짐이 아쉬워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는, 과거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과거는 그저 회한과 추억의 공간일 뿐입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과거입니다. 그걸 ‘어바웃 타임’은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영화 속 팀이 과거를 바꿔 현재는 잠시 바꿀 수 있을지 몰라도, 그에게 다가올 미래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도 어느 순간 미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과거를 과거 그대로 남겨둬야 해요.

시간 속에 들어있는 진리
‘열한시’의 우석이 미래라는 시간에 끝까지 집착해 비극을 자초하는 것과 달리, ‘어바웃 타임’의 팀은 과거를 과거로 남겨둘 줄 압니다.
현실에 충실하라는 뻔한 소리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 진리가 있지요. 과거도 잊고, 미래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현실에만 집착하라는 건 아닙니다. 비록 과거로 돌아갈 수도, 바꿀 수도 없지만, 과거가 소중한 이유는 우리가 그걸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기대함이 있기에 미래가 소중한 것이지요.
2013년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다시 돌아갈 순 없습니다. 하지만 우린 올해를 기억할 겁니다. 그리고 새해에 어떤 드라마틱한 섭리가 펼쳐질지 우린 모릅니다. 하지만 과거를 딛고,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임택
미국 오하이오대학교 영화과 석사과정과 동대학 Interdisciplinary Arts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영화이론 및 미학을 수학하였다. 현재 단국대·인하대·국민대·홍익대·명지대 등에서 영화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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