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 벨레’

영화의 제목 ‘디 벨레’는 우리말로 파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갑자기 이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얼마 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인은 2차 대전과 홀로코스트 등 나치 범죄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언급한 보도를 접하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많은 것들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독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
독일의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 뱅어(위르겐 포겔 분)는 일주일간 진행되는 프로젝트 수업에서 독재정치를 가르치게 된다. 그가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은 “독재가 현대 독일사회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가?”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럴 수 없을 거라 답하지만 교사 뱅어는 수업을 통해서 21세기에도 파시즘이 가능하다는 것을 단계별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처음엔 선한 목적으로 공동체를 만들기를 시작하지만 조직을 갖추기 위해 규율을 만들고 그 규율을 강화하면서 서서히 독재의 싹이 시작된다.
그러나 학생들은 오랜만에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점점 수업에 빠져들게 되고 뱅어 또한 이런 학생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들뜨기 시작한다.

그들이 파시즘을 경험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먼저 모든 독재정권이 출현했던 것처럼 대표적인 인물을 내세운다. 그리고 그에게 존칭을 씀으로 권위를 실어준다. 마치 2차대전 당시 “하이! 히틀러!”를 외쳤던 방식이다. 그리고 누구든 허락을 받아야만 발언의 기회를 준다. 이렇게 통제에 성공하면 다음으로 단체행동을 유도한다. 그리고 드디어 공동체의 이름을 정한다.

이 영화의 제목 ‘디 벨레’는 바로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 집단의 이름이다. 그들은 이름에 걸 맞는 로고를 만들고, 같은 옷을 입는 것을 통해 유대감을 강화시킨다. 또는 자신들만의 인사법으로 서로를 알아보게 만든다. 이쯤 진행되면 관객은 누구나 알게 된다. 이들이 점점 파시즘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영화의 마지막은 수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디 벨레’ 공동체가 도를 넘어 과격해지고 결국 파경에 이르면서 끝이 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가 실화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독일 안에 이미 성숙한 자기반성의 역사인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의 출현은 언제나 가능하다. 더불어 독일에서 네오나치즘이라는 말이 한동안 회자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우리 안 ‘파시즘’ 자리 잡지 못하도록
이제 우리나라와 교회 안을 들여다보자. 우리 안에는 이런 파시즘의 자양분이 없는가? 독재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높은 실업률과 사회적 불평등이 있어야 한다고 영화에서는 말하고 있다.
거기에 높은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답답함이 더해지고 민족성을 건드리면 바로 사람들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사회가 변화되길 갈망하게 된다. 과거 해방 이후에 북쪽지역에 김일성을 앞장 세워서 공산주의가 들어왔을 때 환영했던 인파들은 독재정치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사회개혁을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에서 사회의 지도층을 구성했었던 기독교가 그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더구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자유를 찾아 남으로 떠나 왔다. 공산당이 쉽게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도 있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와 비슷했지만 통일을 이뤄낸 독일을 생각해 보자.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지자 동독의 많은 목사들이 서독으로 탈출했다. 놀라운 것은 서독의 교회 협의체에서는 이런 목사들의 자격을 박탈했다는 것이다. 양을 두고 떠난 목자를 인정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동독에 남아있는 목사들에게는 냉전의 장벽을 넘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조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독일 통일의 배후에 서독과 교류했던 동독의 목사들과 그들에게 양육된 젊은이들의 노력이 매우 컸다는 것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21세기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다시 붙들어야 할 가치가 있다. 바로 교조주의를 넘어선 성찰, 그리고 민족주의를 넘어선 하나 됨의 가치다. 그럴 때 ‘우리 안의 파시즘’이 자리 잡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김성권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연세대 사회학과 대학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MFA를 마쳤다. 미디어선교회 ‘히즈앰티’대표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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