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버 스카이'

10월이 되었다. 10월이라는 계절에 특별한 감수성이 곁들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10월에 관한 노래도 여러 곡이 있고 10월에 관한 시도 많다. 나에게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옥토버 스카이’다. 1999년도 발표된 이 영화는 국내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러 루트를 통해 간간이 소개된 적이 있다. 지금은 스타가 된 제이크 질렌할(주인공 호머 역할)도 이 작품의 아역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략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절망뿐인 어린 시절

1957년 미‧소 냉전의 시기, 콜우드라는 미국의 작은 탄광 마을에 살던 십대소년 호머에게 장래 희망이란 열심히 운동해서 미식축구 선수가 되어 장학금을 받고 도시로 나가는 일 외에는 아버지를 이어 대대로 광부가 되는 것밖에 없다. 물론 호머에게는 유망한 미식축구 선수인 형과 광산에서 존경받는 어른인 아버지 그리고 가슴 따듯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매일 몰려다니며 함께 엉뚱한 사고를 치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린 호머에게 콜우드는 벗어나고 싶은 울타리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미래’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평화롭던 어린 시절은 광산 산업의 쇠퇴로 인한 인력감축 그리고 아버지의 부상으로 인해 조각나기 시작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선택은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광산에서 일하는 것밖에는 대안이 없다. 하지만 호머의 가슴에 불씨를 지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냉전시기 소련에서 먼저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것이었다. 소년의 가슴에 로켓이라는 새로운 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호머는 그때부터 자신만의 로켓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마침 탄광이라는 곳이 로켓을 만들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화약과 각종 부속물을 구하기에 그곳 만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된 발사 실패로 친구도 떠나고 화재에 대한 책임으로 경찰서에 끌려가고 소년에게 남은 것은 절망밖에 없었다. 심지어 엄격하기만 한 아버지에게 부질없는 짓이라며 뺨까지 맞게 된다.

 

울타리를 넘어서다

하지만 이런 호머에게 힘이 되어준 스승이 있었으니 바로 수학선생이었던 라일리 선생이었다. 그녀는 호머에게 로켓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호머가 싫어하는 수학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호머는 그날부터 주경야독에 빠진다. 남들이 공부할 때 탄광에서 일하고 잘 때 로켓을 연구했다. 그리고 전 미국 학생 과학경진대회에 자신만의 로켓과 관련된 발명품을 제출해 최우수상을 받게 된다. 이를 통해 장학금을 받게 된 그는 이제 마을의 희망이 되었고 상급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호머와 친구들이 발명한 부품은 지금도 우주 비행선에서 중요하게 쓰이고 있는 추진 부분의 부속이다.

이쯤 읽으셨으면 아시겠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에 근거를 둔 영화이다. 그 소년은 후일 NASA의 중요한 연구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어린 호머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여 로켓 발사에 매달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오기도 있었다. 그저 평범한 광부가 되길 바랐던 아버지에게 자신의 꿈을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었다. 콜우드라는 마을의 울타리, 곧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치 에서를 넘어서서 장자권을 거머쥔 야곱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이 바뀌는 것

 

 

 

 

이런 호머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88만 원 세대, 3포 세대 등의 말들이 떠올랐다. 사방을 둘러보면 온통 포기하고 싶은 환경밖에 없다. 아마 이런 환경은 앞으로도 쉽게 좋아지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어느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자신이 변하겠다고 하는 이들은 드물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자신이 변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삶을 몸소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세상을 바꾸셨다.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환경, 조건, 이유보다 앞서는 것은 바로 내가 변화되겠다는 결심이다. 그저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자신을 채찍질했던 것처럼 하나님만 바라고 자신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싫은 수학도 방화범이라는 오해도 그저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가듯 가야 한다. 우리 모두 이럴 때 세상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로 변할 것이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야곱은 살아생전 장자권 때문에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거나 주위 환경이 부유해졌던 것보다는 그로 인해 인격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충만해졌다. 바로 자신이 변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처럼 지금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슴 답답한 청춘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10월의 하늘을 보자. 그리고 자신을 바꾸어 보기로 결심해 보자. 그리고 불가능한 꿈을 꾸어보자. 그의 눈에 세상은 이미 바뀌어 있을 것이다.

 

 

김성권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연세대 사회학과 대학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MFA를 마쳤다. 미디어선교회 ‘히즈앰티’대표로 섬기고 있다.

저작권자 © 아름다운동행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