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 씨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면서 인생의 노년을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에 나오는 요양원 모습은 먹기 싫다고 뻗대기도 하고, 보행 보조기로 밀고 다니다 부딪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은은한 사랑이 오고 가며 마지막 화음을 만드는 음악이 연주되기도 하는데 실제 요양원은 조용한 노화의 공간일 뿐인 것이다.

표정 없는 얼굴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노년의 단계, 그것도 거동이 불편해 오고 갈 수 없어 자리를 보존하고 있게 되는 기간이 얼마나 지나야 하는 걸까.

‘생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노년이 아닐 수 없다.

 

그이 이름이 뭐였지

지영 씨는 그곳을 계속 방문하면서 어머니와 한 방에 같이 계시는 정 할머니와 가까워졌다. 그분은 지영 씨 어머니에 비해 상태가 좋은데도 “지루해. 빨리 가고 싶어”라며 부정적인 표현을 많이 하셨다.

“할머니, 그러면 천국 가실 준비를 해야지요.”

지영 씨는 복음을 전할 좋은 기회라 여기고 운을 떼었다.

“준비가 뭐야. 난 그리 몹쓸 짓은 안하고 살아왔어.”

이렇게 말씀하는 어른께 죄를 설명하고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을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날의 어머니 방문은 일석이조를 한 것으로 마음이 뿌듯했다.

얼마 후, 다시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정 할머니는 반가워하며 손짓했다.

“내가 그이를 믿으려고 하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 나. 이름이 뭐였지?”

“아, 예수님이요?”

“이제 주일마다 예배도 가실래요?”

지영 씨는 신이 나서 ‘지난번에 얘길 잘했나보네’ 생각했다. 그 때, 정 할머니가 “내가 그이를 믿으려고 맘먹은 건 저 분 때문이야” 라며 누워계신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저렇게 몇 년을 누워 지내면서도 불평하는 걸 보지 못했어. 게다가 날마다 성경책 보고 기도하는 게 너무 용한 거야. 그래서 나도 그 예수를 믿기로 마음먹었어.”

초점이 희미해진 눈동자, 누워 계시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얼마나 쉽게 삶의 의미를 운운해 왔는가. 어머니는 옆의 할머니와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지내지만 사는 모습만으로 제 역할을 하고 계신 거였다.

착한 알츠하이머

지영 씨 어머니는 알츠하이머 약을 드신지 몇 년이 된다.

기억의 폭이 좁아지고 지각이 단순해져서 시간만 좀 지나면 “어둡기 전에 어서 가라”, “식사를 어디서 하나”를 반복하시지만 알츠하이머의 일반적 염려와 다르게 이전보다 더 순해져 온순한 말만 사용하신다. 직계 자녀가 아니면 다 존대어를 쓰시며 ‘감사해요’, ‘난 괜찮아요’ 하시니 착한 아이 같은 모습으로 잔잔히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런 노년의 단계를 지내야 한다면 어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고집부리고 불평하는 모습이 아닌 노화에 순종한 모습이랄까. 그 모습으로 옆 사람에게 예수의 향기를 전한 것이다.

수명이 길어지며 노년 인구가 아무리 많아져도 하나님이 이 땅에 두시는 데에는 각각 의미가 있는 것, 그 생존의 의미를 찾는 마음으로 노령자를 대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작은 천국 패밀리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세월을 지내며 작은 천국의 모습으로 성숙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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