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결혼 소식이 줄을 잇는다. 올해 말까지 열 건, 그 가운데 두 가정이 상대방 부모님이 다른 나라에 사는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한 가정은 윈난 성 출신의 신랑, 다른 쪽은 네덜란드 신랑이다.

굳이 조선 말, 대원군의 외국인에 대한 극 보수적인 성향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유독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해 선을 그어 왔다. 그런 우리의 자녀들이 외국인 신랑 신부들을 데려 오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요

예원이는 모범생 외동딸로 컸다. 고등학교 때 호주로 유학을 가서 영어와 다른 문화 배우느라 힘든 중에도 늘 “괜찮다”며 부모에게 감사를 전했다. 대학도 졸업 후 실제로 할 일을 생각하며 호텔 경영학을 선택했다. 호텔을 잘 경영하려면 레스토랑이 중요하다며 밑에서부터 일을 배워 주방장 자격까지 얻었다. 이제 결혼할 나이인데….

부모는 귀국을 종용해 준비한 후보들을 만나게 했다. 예원은 한명씩 다 보고 나서 부모님께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소개시켜 주신 분들을 믿고 성심껏 만났어요. 좋은 분들이고 오히려 제 분수에 넘치기도 해요. 하지만 마음이 안 열려서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저와 함께 일하는 중국인 친구가 마음속에 있더라구요.”

“뭐라고?”

“저도 다른 나라 사람이라 지금껏 마음을 열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선을 보면서 깨달은 거예요.”

이렇게 충격적인 말을 던져놓고 다시 한국을 떠난 예원은 “엄마,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사업 파트너로도 만족스러워. 엄마, 아빠가 외국인이라는 점에 대해서만 마음 문을 여시면 결혼하고 싶어요”라며 설득했다.

“아, 우린 애가 하나인데…”

얼마 전, 윈난 성에 많은 친척이 모여 하루 온종일 결혼 잔치를 벌였다. 문화가 다르나 친절하고 따스한 정이 우리의 옛 모습 같았다고 부모는 전한다. 이 가을, 여기서 결혼식을 치르고 나면 예원은 완전히 독립된 딸로 내보내질 것이다.

 

좋다더니- 안한다더니-?

미성은 디자인을 공부하는 멋있는 대학생이었다. 친구들과 미팅을 하는 자리에 파란 눈의 조엘이 나온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짧은 한국말로 자기는 네덜란드에서 한국 문화를 배우러 연세대 어학당에 유학 온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외국 경험이 없는 미성과 짝이 된 조엘은 조용히 그러나 적극적으로 따라다니며 관심을 표현했다. 미성 역시 짧은 영어를 시도하며 의사소통이 이루어짐에 경탄하고 있었다.

“엄마, 우리 집에 외국 친구 데려올까?”

“어? 어떡하려고?”

“한국 가정에 와보고 싶대.”

이렇게 친해진 친구 사이가 대학을 졸업하며 결혼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좀 빠르지 않니? 너 외국 나가서 살 수 있겠어?” 이런 저런 말을 해봐도 두 사람은 결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 애도 착하고 성실하니 네가 좋다면 그래야 할까보다.”

승낙하자 곧 네덜란드에서 신랑 부모가 오신다 하고, 웨딩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딸이 “엄마, 나 디자인 공부한 거 여기서 한번 일해보고 싶어. 지금 결혼해서 외국으로 가고 싶진 않아” 하는 것이었다.

난감한 순간이었다. 외국인과의 결혼을 이해시키느라 가족들한테 얼마나 많은 설명을 했는데. 그러나 이 상황 역시 딸의 마음을 존중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좀 서둘렀지.”

미성 엄마는 이곳저곳 전화를 돌려 사정을 알렸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며 다시 이상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우린 아무래도 결혼해야겠어요. 이만한 사람을 다시 만날 거 같지도 않고, 이젠 좀 마음의 준비가 됐어요.”

“그래, 네가 좋다면 그래야지.”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그동안 가져온 가치관, 자존심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전영혜 객원기자

작은 천국 패밀리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세월을 지내며 작은 천국의 모습으로 성숙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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