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펼쳐 보이는 ‘역방향 풍경’

어느 교회 청년 수련회 공연을 마치고, 다음 날 집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습니다. 차내 짐정리를 끝내고 지나는 풍경을 인식할 무렵 앉은 자리가 역방향임을 알게 되었지요. 순방향 풍경은 미래가 펼쳐 보이는 풍경이고, 역방향 풍경은 과거가 펼쳐 보이는 풍경이었습니다. ‘세상 속 풍경들은 참으로 아름다운데, 세월 속 나의 풍경들,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른 한 편의 시가 차창에 서렸습니다. ‘호시노 도미히로’라는 일본의 장애 시인이 쓴 시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의 바람이 되고

꽃에 불면
꽃바람이 된다.

방금,
나를 지나간 바람은
어떤 바람이 됐을까.

나를 지나간 바람
‘나를 지나간 바람 어떤 바람이 됐을까?’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니 참으로 아름다운 자유의 날들과 기회들이 그득했었는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다 지나가고 없는 듯했습니다. ‘좋은날풍경’이라는 이름으로 노랫길을 떠나온 지 어느덧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역방향 풍경 속에 지나간 10여 년의 모습들이 한 컷씩 슬라이드 필름처럼 떠올랐습니다. 터널을 지날 때 덜커덩거리는 기차소리는 세월의 긴 시계바늘의 움직임 같았고 캄캄한 어둠을 배경으로 한 차창은 널찍한 거울이 되어 제 영혼을 비추어주는 듯 했습니다.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뜨인 눈보다 가려진 눈으로 지내온 날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순간 마음 속에 맑은 샘이 솟아났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절망’이라는 단어입니다. 희망으로 출발했는데 먹먹한 절망 앞에 다다른 느낌. 하지만 그 먹먹한 절망이 아직 살아있는 나를 비추어주었고 행여 모를 일이지만 아직 주어질 새날들이 있음을 비추어주었습니다. 절망은 거울 뒷면의 어둠 같이 영혼의 거울이 되어주었습니다.
지나는 풍경에 호시노의 시 ‘나를 지나간 바람’을 쓰고 또 쓰는데 실루엣 같은 선율이 첼로 소리가 되어 제 마음 속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선율을 잊을까 핸드폰에다 콧노래로 녹음을 했습니다. ‘홍순관’님의 ‘어떤 바람’이라는 주옥같은 노래가 있는데, 감히 또 다른 곡으로 만들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꺼이 귀엽게 봐주시리라 스스로 여기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어느새 기내 방송이 종착역을 알립니다. 생(生)의 종착역에 도달한 듯 한 묘한 느낌. 이제 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저 세상으로 건너가야만 할 것 같은 숙명의 끝점. 그런 아찔함에  자리를 지켜보지만 다음 손님을 태워야 하는 시퍼런 칼날 같은 세월을 닮은 이 기차는 그만 저를 밀어내고야 말았습니다.
오는 6월 6일(목, 현충일) 저녁 7시에 부산 수영로 교회 ‘희락홀’에서 “흐르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주제로 ‘좋은날풍경 10주년 콘서트’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를 지나간 바람’이라는 노래를 첼로와 함께 노래하려 합니다. 아름다운동행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봅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 여기고 떠나온 노래길 10여 년간의 노래를 부르려 합니다. 어린 나무 같은 좋은날풍경의 사역에 손우물 같은 작은 중보를 부탁드립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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