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네이웃사랑나눔실천운동본부 조석고 목사

전라북도 군산의 저수지 일부와 은파시민공원을 포함하고 있는 나운동 일대, 그곳에 가면 ‘참네이웃사랑실천운동본부’(이하 이웃사랑실천운동본부)란 이름을 붙인 소형트럭 한 대가 주택가 골목골목을 돌아다닌다. 트럭 뒤편, 짐 싣는 공간에 덧댄 옆면 가로막에는 “어려운 이웃을 도와 달라”며 헌책, 신문지, 헌옷, 박스, 각종 고철 등 수집 물품 목록이 적혀 있다. 어떻게 보면 폐품 수집 차량 같지만, 놀랍게도 이 차를 모는 사람은 목회자다.
조석고 목사(70).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군산 시내의 한 교회를 담임하던 평범한 목회자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각종 폐품과 중고물품을 수거하러 다니는 ‘수집상’으로 변모했다. 아침 일찍부터 군산시 나운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골목에 쌓여 있는 박스나 헌옷, 신문지 등 폐품을 주워 소룡동에 있는 이웃사랑실천본부 사무실로 가져간다. 사무실이래야 허름한 컨테이너 한 동이 전부지만, 그곳에는 조 목사가 수집해 온 각종 폐품과 중고물품들이 잔뜩 쌓여 있다.
‘멀쩡한’ 목회자였던 그가 왜 갑자기 폐품과 중고물품들을 주우러 다니게 된 걸까?

바울의 모범을 좇아
“그동안 개척교회를 계속해왔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면서 돌아다니다보니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그래도 복지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3~4년 전만 해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개척교회로서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개척교회들이 보조를 받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그래서 사도 바울을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비량 선교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자는 생각에 이웃사랑실천본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조 목사는 2008년 3월, 20년 이상 계속해온 목회를 접고 사비를 털어 이웃사랑실천운동본부를 설립했다. 그의 뜻에 공감한 주변 사람들이 운동본부 설립에 동참했다. 그리고는 헌책, 신문, 헌옷, 고철과 같은 폐품과 중고제품 등을 기증 받거나 수거해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정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찾기 위해 양로원도 가고, 고아원도 가고, 동사무소도 가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다보니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한 노인이지만 가족이 있기 때문에 정부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자식들은 자신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부모를 돌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더 시급하다는 생각에 혼자 사는 어르신들과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쌀을 전달했습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
하지만 이 일 역시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뜻을 같이해 운동본부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다. 폐품을 주워 파는 일이니 고되고 별 모양새도 나지 않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전혀 없는 순수한 봉사였기 때문이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떨어져나가고 조 목사 혼자 남게 되었다.
폐품 수집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기증도 해주고 쓰던 가전제품이며 고철처럼 값이 나가는 물품들도 제법 쏠쏠하게 수집이 되었지만,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부터는 폐품 구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수입이 괜찮아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도움을 줄 수 있는 폭이 좁아지고 있어요. 전에는 아무리 전화가 안 와도 물품을 기증하겠다는 전화가 하루에 1~2통은 왔는데 이제는 전화 한 통화 오지 않는 날도 많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고물상들도 방법을 바꿔 자신들이 직접 아파트로 들어갑니다. 관리실의 협조를 얻어 방송을 하고 각 가구에서 가져오는 폐품 수량에 따라 돈도 주고 쓰레기봉투도 주니까 주부들의 경우는 몇 푼 안 되는 거지만 다 모았다가 이런 사람들에게 내줍니다.”
할 수 없이 조 목사는 주택가 골목을 돌아다니며 박스나 버려진 신문지 같은 폐지들을 주워다 파는데 이것만 가지고는 한 달 내 돌아다녀도 2~3만원 모으기가 벅차다. 하지만 그걸 모으느라 몰고 다니는 트럭의 기름 값만 30만원이 넘게 나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허탈한 심정이 듭니다. 그래도 ‘목사님, 저희 쌀 떨어졌어요’하는 전화를 받으면 그날 하루는 정말 열심히 안 돌아다닐 수 없어요. 그게 제가 사는 이유니까요.”

봉사의 진정한 의미
조 목사는 그동안 부활절, 추석, 가정의 달, 구정 같은 절기에 맞춰 쌀을 보내주거나, 여름에는 모아놨던 선풍기, 겨울에는 전기장판이나 난로 같은 것들을 주는 방식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왔다. 하지만 조 목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도울 사람을 찾는 것도, 도울 물건을 찾는 것도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실은 정말로 어렵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어려운 사람들은 잘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해요. 그래서 한국교회가 구제하고 봉사하는데 관심을 갖고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때가 지금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목사는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역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런 일을 하다보면 기적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대개 금요일이나 토요일 같은 경우는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박스나 폐지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 오늘은 희망이 없구나…. 일찍 접고 집에나 들어가야 겠구나 생각하는데,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옵니다. 그래서 옷을 준다거나 고철이나 양은 같은 것들을 가져가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조 목사가 하고 있는 일은 ‘비효율적’일수도 있다. 폐품을 팔아 남을 돕는다는 것은 한계가 뻔한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은퇴를 앞둔 70세의 나이에 목회 현장을 떠나 자신의 땀을 흘려 남을 돕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그 기도의 ‘중심’에는 어떤 마음이 놓여 있는 것일까?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폐지와 박스를 찾아 주택가 골목을 누비는 노 목회자의 얼굴은 의외로 건강하고 깨끗했다. 웃을 때 얼굴 전체에 퍼진 깊은 세월의 흔적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작은 주름들을 물결처럼 만들어냈다. 오래 입어 헐렁해진 옷처럼 공명심과 개인적 욕심이 빠져나간 노 목사의 편안한 웃음이었다.
“결국은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다 주님이 하시는 일이죠. 영광은 주님이 받으실 겁니다. 나는 그저 심부름꾼일 뿐이죠. 그래서 사실은 할 말도 없습니다.”
문의 : 019-66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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