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 맞은 시인 김소엽 권사

진주는 바다의 아이, 달의 눈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진주를 보면 슬픈 느낌이 든다. 부드럽고 희고 영롱한 느낌이지만 더 자세히 보면 그 안에 강한 힘도 느껴진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김소엽 시인(신촌교회 권사, 대전대 문창과 석좌교수,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장)은 그 진주를 닮았다. 슬픈 느낌이 있지만 강하고, 그것이 서로 어우러져 아름답게 느껴진다. 진주가 조개가 아파할 때 생기는 ‘눈물’ 같은 보석이라 그런 것일까.
1985년 김 시인 41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인 양영재 교수(전 연세대 영문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감기 한 번 안 걸리던 건강한 남편이었는데, 게다가 김 시인은 전혀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연금 없던 시절 12살배기 딸 하나를 데리고 살아내야 하는 ‘현실’에 그냥 던져진 것이다.
“죽고 싶었습니다. 살아갈 날의 무게가 파도처럼 밀려드는데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신혼여행지인 충무 바닷가를 찾았지요.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파도는 왜 치는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알겠더라고요. 세상의 더러움과 불순물들을 마치 어머니와 같이 받아 안기 때문에 ‘바다’이겠구나 하고요. 그리고 얼마나 힘들고 아플까, 아파서 몸부림치니 저렇게 소금이 되는구나. 부패함을 막는 소금은 가장 더럽고 아픈 것들을 통해 탄생하는구나.”
‘이 모든 고통과 고난을 바다처럼 받아들여서 소금이 되어라’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한 순간 만들어진 시가 바로 ‘바다에 뜬 별’이다.


“부서져야 하리/더 많이/부서져야 하리/이생의 욕심이 하얗게/소금이 될 때까지//그래서 비로소/조용해지리/슬픔도 괴롬도/씻기고 부서져/맑고 깊은 바다 되리…”


그 뒤부터 김소엽 시인은 수많은 후학들을 가르치고, ‘그대는 별로 뜨고’ ‘어느 날의 고백’ ‘지난날 그리움을 황혼처럼 풀어놓고’ 등 시집을 통해 정말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1월 7일 고희를 맞아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고희 기념문집 출판 감사예배’를 드리게 된 것.
“동료와 후배,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논총집 ‘사막 그리고 별의 시학’, ‘고희기념문집’을 내주셨어요. 그리고 200분이 넘는 분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글을 써주시고 또 참석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지요.”
특히나 돌아가신 아버지와 같이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미국으로 유학 간 딸 양서윤 교수(미시간대학교)가 참석해 너무나 기뻤다고.
또한 고희 기념에 즈음하여 발간된 김소엽 시선집 ‘그대는 나의 가장 소중한 별’(시월출판사)도 역시 특별한 책이다. 활자 한 자 한 자를 주물로 만들어 한지에 찍어내는 우리나라 전통 활판 인쇄로 제작한 것. 그동안 펴낸 7권의 시집에서 100편을 골라 실었다.
“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우리 전통 활판인쇄 매력에 폭 빠졌지요. 천권만 찍었는데 한 권 한 권마다 제가 직접 낙관을 찍고 ‘내 생애는 당신 영혼으로 불어지는 한 자루 피리소리’라고 써넣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또 다른 시집 ‘꽃이 피기 위해서는’(도서출판 시와 시학)이 출판되었다.
“30년 동안 혼자 살면서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인생의 선한 이웃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고희를 맞아 뒤돌아보니까 정말 감사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출판예배 때 김 시인은 ‘꽃이 피기 위해서는’을 낭송하였다.


“꽃이 그냥 스스로 피어난 것은 아닙니다/꽃이 피기 위해서는/햇빛과 물과 공기가 있어야 하듯이//나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닙니다/기도로 길을 내어주고/눈물로 길을 닦아 준 귀한 분들 은덕입니다//내가 잘나서 내가 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벼랑 끝에서 나를 붙잡아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해주신/보이지 않는 그분의 섭리와 은혜가 있은 까닭입니다”


그래서 김 시인은 다른 이들에게도 길을 내어주기 위해 힘을 기울인다. 자신이 힘들 때 길을 내어주고 닦아준 다른 이들처럼 말이다. 축하예배 때 들어온 축의금을 기관 선교기금으로 내놓기로 결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그런 김 시인의 뜻에 내년에도 ‘나눔’을 목표로 신년감사예배를 초교파적으로 드리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그것뿐 아니다. 본인이 초등학교 백일장에서 시를 써 담임선생님에게 칭찬을 듣고 시인의 꿈을 꾸게 된 것처럼 어린이들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려고 양촌초등학교 백일장 기금을 매해 보내고 있는 것.
“아이들이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요. 내가 너무 기뻐요.”
엄마도, 교수도 아닌 그냥 개인의 꿈을 물었다. 고희라는 큰 언덕을 넘으며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
“남편이 생전에 ‘한 편을 남겨도 좋으니 영혼을 울릴 수 있는 시를 쓰시오’라는 말을 하셨어요. 저는 그 말을 유언처럼 생각합니다. 제 생애 영혼을 울릴 수 있는 명작의 시 한 편을 남기고 싶습니다. 상처받은 영혼에게 위로가 되고 시로써 평생 복음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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