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삼촌 한 분
평생 뇌성마비로 고생하시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그분을 삼촌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20년 전에 삼촌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출가하지 않았던 형제들도 세상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넓고 넓은 세상에 홀로 된 삼촌. 그 때 삼촌에게 유일한 희망의 빛은 매주 한 두 번씩 찾아오는 한 선교회였습니다. 삼촌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셨죠. 선교회에서 몇 분이 오시는 걸 마중하시려 포대 하나를 가지고 깔고 폈다 하시며 몸을 끌어서 대문 밖까지 나가 찬바람에 한참을 기다리곤 하셨지요. 그렇게 2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살아오신 것입니다.
그런 삼촌만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삼촌의 웃는 얼굴을 보며 ‘동백꽃’이라는 노래로 문을 열었습니다.

나무 위에서 한 번
떨어져 땅 위에 한 번
마음속에서 한 번
그렇게 동백꽃은 세 번 핀다.
봄바람에 떨어진 동백꽃이
웃고 있다.
떨어질지도 어디로 갈지도
알고 있었나 봐.

[동백꽃_ 좋은날풍경]

“예수님 함께 계셔 안 외로워”
노래를 끝내고 삼촌에게 “형제가 몇이냐”고 물었더니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여 동생 하나, 남동생 둘, 그리고 누나가 너이(넷).”
저는 내심 형제들이 많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삼촌, 형제들이 자주 와요?”
“안 와! 두 번 왔어! 엄니, 엄니 돌아가시고.”
“네? 어머니는 20년 전에 돌아가셨잖아요!”
“그 뒤로 두 번, 두 번 왔어! 두 번.”
“네? 20년 동안 두 번밖에 안 왔어요? 8남매나 되는데?…”
순간, 저는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삼촌, 외롭지 않으세요?”
“안 외로워! 사람들 외로워서 술 먹고 담배 피고 해도 나는 그게 안 돼. 예수님, 예수님이 함께, 함께 있어! 하나님이 계셔 늘…!”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하는 상투적인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촌의 어눌한 고백은 그 많은 상투적인 고백들을 헤치고 제 마음 중심까지 와 닿는 데는 대번이었습니다. 무언가가 제 가슴을 쿵! 내리치는 것 같았습니다. 제 가슴이 검짙게 멍들어가는 찡한 느낌…. 실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아픔’이었습니다.
“도우미, 도우미 아줌마…. 그 사람 천사, 그 사람 예수님 믿는 사람. 그 사람 너무 좋아요.”
삼촌에겐 도우미 아줌마가 있었습니다.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한 살림. 도우미 아줌마가 분에 차지도 않는 금액으로 수고해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많은 형제들보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곁에 있는 사람이 참형제구나.
“삼촌, 형제들 보고 싶지 않아요?”
“안 보는 게 좋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도움도 못 주고, 미안하기만 하고.”
삼촌은 참 착한 분이셨습니다. 배려가 남다르게 깊으시고 겸손이 삶에 배인 분이셨습니다.
“삼촌, 삼촌은 왜 그렇게 활짝 웃고만 계셔요?”
“짜증내려면 한정 없고, 짜증낸다고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고…”
삼촌은 간단명료하게 본질만 말하셨습니다.
“삼촌, 남은 생에 꿈이 뭐에요?”
“…팔, 팔을 써보고 싶어, 다리를 써보고 싶어, 다른 사람 도움 안 받고 내 힘으로 직접.”
정상인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삼촌에겐 지극한 꿈이었습니다. 삼촌의 말에 저는 감사의 설정 범위를 다시 조절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편의 글이 있었지요. 자기 생각을 다 내려놓고 낯선 동양나라에 온 한 사람. 예수님 닮은 한 사람. 언더우드 선교사의 글입니다.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설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말할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볼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누군가는 지금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어둠아, 고맙다. 너로 인해, 별을 보노라!”
“삼촌, 자주 오겠다는 약속은 못하지만 가끔 올게요. 그리고 삼촌 위해 늘 기도할거니까 삼촌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다음에 올 땐 12시 전에…”
다음에 올 때는 점심 같이 먹자는 얘기셨습니다. 그러겠다고 삼촌의 얼굴을 보는데 사정없이 그어진 인생의 주름들이 얼마나 깊은 말을 하는지요. 가끔씩 맛있는 거 사들고 와서 가능한 오래도록 옆에 있어주고 싶었습니다. 작은 다짐 하나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나약한 제 마음이 속으로 부담스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래 한 곡을 불렀습니다.
삼촌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삼촌의 웃음 짓는 얼굴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은총의 바다에서 은총을 모르며 유영하는 물고기 같은 내가 아닌가. 평생 물에서 살지만 제 살갗에 닿는 게 물이라는 걸 모르는 물고기. 그런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의 가장 큰 죄는 사랑 속에서 사랑을 모르며 산 순간들… 그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신앙의 시작은 이미 받은 은총을 깨닫는 데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 깨달음의 나날들이 쌓인다면 아마도 두 손 들어 구하는 은혜가 부끄러워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별이 빛납니다. 평소 별에게 무슨 말을 했다면, 그날은 어둠에게 한 마디 건넸습니다.
“어둠아, 고맙다. 너로 인해, 별을 보노라!”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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