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정 집사님께

기억을 더듬어보니 벌써 4년 전 이때쯤인 것 같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둔 민 집사가 학부형 두 명과 성경공부를 하고 싶으니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며칠 후 동네 북카페에서 학부형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낯선 얼굴 가운데 유난히 내 눈에 들어왔던 젊은 엄마가 오늘 내가 추억하려는 박여정 집사이다. 그녀의 외모는 TV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인상이었다. 늘씬한 키에 조막만한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와 세련된 차림새…. 그런데 학부형이란다. 성악가 교수이신 어머니의 교육을 받고 명문 여자대학을 졸업한, 부족함 없이 자란 그녀. ‘사’자 직업을 가진, 몸과 영혼이 건강한 남자와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야말로 청담동 며느리 차림이었다.
그런 그녀가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 처음 시집왔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시어머님께서 매주 구역식구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마련하시고, 무슨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만 들으시면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한 종교를 갖고 계신 줄 알았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믿음에 대한 궁금함과 나도 저런 믿음을 갖고 싶다는 거룩한 욕심이 생겨서 시어머님을 좇아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는 것이다. 더욱이 어머니의 기도가 자녀를 형통케 한다는 엄청난 깨달음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간절한 기도제목을 내놓았다. 바로 수원으로 이사 가는 것이란다. 여섯 살 큰아이를 수원에 있는 미션스쿨에 보내려면 부속 유치원 일곱 살 반을 올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기도제목 1번은 수원으로 꼭 이사 가는 것이라고 했다.
남들은 어떻게든 서울로 오고 싶어하는데, 더욱이 남편의 직장은 광화문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이 믿음 안에 자라서 그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에 대한 나의 편견은 사라져 버렸다.
박 집사를 비롯한 세 명의 학부형들과 기도제목을 나누며, 우리의 공통 기도 제목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장막 문제’였다. 주님은 세 번째 모임에서부터 우리의 기도를 차례로 들어주셨다. 나를 비롯한 다른 엄마들의 기도가 응답되면서 박 집사는 애가 탔다. “2월말까지 집이 팔리고 수원에 집을 못 얻으면 우리 아들 미션스쿨에 못 들어가요.” 시간은 벌써 2월 중순을 넘기고 있었다. “내일 수원에 가서 살 집부터 계약하겠습니다. 신앙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제 소원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박 집사의 믿음이 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견하고 고마웠다. 사실 보이지 않는 상황 가운데 발을 내딛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짧은 2월이 다 지나갔다. 대부분 3월 5일경에 입학식이 있으니 아직 며칠의 시간은 있었다. 우린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드렸다. 드디어 3월 3일에 박 집사의 서울 집 계약이 이루어졌다. 할렐루야! 분명 나보다 어린 성도였지만 믿음의 소원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을 박 집사는 보여주었다. 내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내가 배우는 시간이었다.
박 집사가 수원으로 이사를 간 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전화 너머로 생존을(?) 확인하지만 문득 뒤돌아보면 거기 서있을 것 같고 환하게 웃고 있을 것만 같다. 예수님이 푯대 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긴 여정을 동행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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