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 씨는 지난 건강 검진에서 초기 암진단을 받았다. 오십년 인생에 가장 놀랐던 순간이었다. 당황스런 시간을 지내며 수술을 하고 나니 건강을 위해 새로운 생활 패턴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산 속에서 열리는 일주간의 자연 건강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먼 길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엔 많이 힘든 중환자들만 모여 분위기가 예상과 영 달랐다. 하지만 이미 등록도 다했고 몇 시간을 달려 왔으니 어쩌랴. 그 밤, 연미 씨는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된 모녀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젊은 딸을 간호하는 초로 엄마의 애틋하고 꿋꿋함, 밤새 괴로워하는 환자의 고통, 지방에 살며 서울로 진료를 다니느라 이모저모로 애쓰는 일.

병원 상경의 풍경이 바뀌다
연미 씨는 자신도 암의 경고 속에 건강교육 프로그램엘 참석한 것인데 오히려 그곳에 도우미로 와있는 듯,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있었다.
일정을 다하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연미 씨는 그 환자의 병원 진료 날, 서울의 터미널로 마중을 가겠다고 했다. 병원까지 자동차로 데려다 주고 기다려 연미 씨 집에 와 숙식을 하자고 한 것이다. 2박 3일이 걸리는 진료 때마다 병원 근처 모텔 방을 얻어 음식점을 돌며 끼니를 채우던 이들에게 연미 씨 집은 어쩜 천사의 집이었을 것이다. 정갈하고 쾌적하고 편안한….
연미 씨의 이런 마음을 남편에게 얘기하자 남편은 흔쾌히 그녀의 뜻을 지지해주었다. “당신이 좋은 대로 해. 화장실 있는 아이 방이 비어 있으니까 그 방을 쓰면 되겠네.”
한 달에 두 번씩 숙식과 교통 문제로 큰 부담이었던 병원 상경은 연미 씨를 만나고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이왕 서울까지 온 김에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 하니 청계천, 삼청동, 서울 나들이까지 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천사를 만났어요.”
연미 씨는 이들이 이렇게 기뻐하고 감격하는 게 좋아서 몇 달째 돌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유학을 갔던 딸이 졸업하고 집에 돌아온 것이다. 연미 씨는 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딸 역시, “나는 서재에 내 컴퓨터 가져가서 지내면 돼” 라며 흔쾌히 자기 방을 내주겠다고 했다. 지금껏 철없는 아이로만 알았는데 아빠에 이어 딸도 엄마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뻤다.
“사실, 저는 일종의 재미도 느껴요. 제 작은 섬김에 너무나 크게 감격하는 그분들 모습, 우연히 엉뚱한 곳에서 만난 그들에게 제 마음이 열린 것, 그리고 우습게도 ‘천사’ 라는 소리를 듣는 거 말이에요”
연미 씨는 정말 자의식 없는 천사같이 보였다. 연미 씨뿐 아니라 그 가족은 모두가 큰 일을 대수롭지 않게 해내고 있는 천사들이었다.
이러는 중에 그 환자는 시한부를 넘기고 종양이 작아진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전의 종양과 최근 것을 비교하는 기적의 사진을 받은 연미 씨는 그걸 들고 다니며 기뻐했다.


전영혜 객원기자 gracejun10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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