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 씨 오빠는 긴 곱슬머리에 기타 잘치고 노래 잘하는 대학생이었다. 컴퓨터 전공자로 유머러스하며 이야기를 잘해 고등부 교사로 인기가 많았다. 정은 씨는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주는 교회언니들이 오빠를 좋아하는 여학생인 것을 알면서 모른 척 그들의 친절함을 누리고 살았다.
오빠는 군대 방위를 거쳐 직장을 다니면서도 정은 씨에겐 늘 인생 과외 선생님처럼 책 이야기나 삶의 얘기를 해주곤 했다.

사라진 수박의 흔적

세월이 흘러 오빠도 정은 씨도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긴 때였다. 정은 씨가 이사를 했다는 소식에 오빠는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온다고 했다. 그런데 집에 온 사람들의 얼굴이 안 좋아 보였다.
“성우야, 먹을 것 좀 줄까?” 그러자 조카가 울먹이며 “수박 먹으려고 큰 걸로 샀는데 아빠가 깨뜨렸어.” “응?” “계단 올라오는데 아빠가 넘어져서 수박이 다 깨졌어.”
오빠는 안경을 고쳐 쓰며 머쓱해했다. “아빠 안경도 벗겨져서 깨질 뻔 했어.”
그제야 오빠 얼굴을 살펴보니 벌건 자국이 있고 안경테도 휘어져 있었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조카는 여전히 수박 이야기를 하며 울먹였다. “큰 수박 아빠가 다 깨뜨렸어.”
정은 씨는 그날 정말 놀랐다고 했다. 늘 뭐든지 잘하는 어른 오빠가 미끄러져서 수박을 깨다니…. 나중에 배웅을 하며 아래 층 계단을 보니 아직도 수박물이 흥건히 벌겋게 남아 있었다. 그 깨진 수박 조각을 다 어떻게 치웠나. 얘 앞에서 넘어지고 쩔쩔매며 애썼을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고…

보통사람, 우리 오빠

정은 씨가 그 후 전세금과 얼마를 합쳐 자그마한 아파트를 살 만큼이 되었을 때다. 부모님은 이민 가시고 딱히 누구와 의논할 수도 없어 오빠한테 물었다고 한다. 당시는 목동에 아파트를 지어 처음 분양할 때였다.
“오빠, 목동 어떨까?”
“목동은 하지마라. 거긴 물이 차는 동네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문제가 생긴다.”
오빠 말을 들은 정은 씨는 목동의 아파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후 목동은 상상할 수도 없는 좋은 동네로 변해갔다.
몇 살 위인 오빠는 언제나 큰 사람으로 무엇이든 잘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후 보통 사람으로 나이 들어감을 보며 정은 씨는 그 이상화 되었던 오빠 모습을 차츰 내려놓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도 정은 씨는 오빠 얘기를 할 때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전영혜 객원기자 gracejun1024@hanmail.net

 

유머한마디

각자기도

여럿이 함께 식사를 할 때 주변이 소란스러우면 “각자 기도하고 드세요.”라고 말하게 된다.
하루는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각자 기도하라고 하자 아들은 “아빠, 기도를 진짜로 해야지 가짜로 하면 어떡해요.”라고 말했다.
가짜 기도? 아, 각자 기도! (이 애가 여섯 살쯤 되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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