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선씨는 이번 달이 매우 바쁘고 중요하다.

학위과정에서 치러야 하는 시험들이 있어 미리부터 머리가 복잡해 있었다.

온 가족이 공부하는 가정에서 주부마저 학생으로 살아가려니 늘 살림은 기본만 하고 사는 식이다.

그런 중에 가끔 시어머니가 오실 때면 식사, 청소 모두 신경 쓰이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에도 거의 통보식 연락이 왔다.

“한 열흘 들를 테니 그리 알아라.”

“어머니, 저 이번 달 바빠요 날짜를 다시 정하면 어떨까요.”

“벌써 비행기 표 예약 다 됐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너 할 일해라.”

영선씨는 이리 저리 궁리를 짜보지만 학교스케줄을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영선씨는 근처 호텔을 알아보았다.

일주일만 어머니가 호텔에 계시면 그런대로 시험 일정이 지나갈 거 같았다.

드디어 어머니가 오시고 이 계획을 알려드렸다.

그러자 “나는 호텔생활 싫다. 애비랑 손주보러 왔는데….”

영선씨는 이번 학기에 과정을 미루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다함께 집에 있으면 할 일을 할 수 없을 게 뻔했다. 난처해하는 영선씨에게 시어머니는 “네가 호텔로 가서 지내면 되잖니.”하시는 거였다. “그럼 어머니, 제가 호텔로 나가겠어요.”

영선씨가 그로부터 일주일 호텔서 집중해 공부하고 오니 어머니가 집안 청소, 식생활 해결을 다 해 놓으셨다. 잘 지나간 일주일, 영선씨는 자신이 바나나 며느리로 되어가고 있는건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바나나'라는 말은 겉은 동양인이지만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은 서구화된 사람을 가리켜 유학생 사이에서 하는 말이다.)

 

 

시어머니의 색다른 주문

영선씨 시어머니는 영선씨가 결혼을 준비하던 때, 색다른 주문을 하셨다.

“우리 집안에 예단하느라 비용 쓰지 마라. 결혼식 비용도 최소로 줄이고 대신 그거 잘 가지고 있다가 아이 갖고 힘들 때 도우미를 적절하게 쓰도록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하는 게 며느리 너만 위한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좋은 거란다. 이를테면 가정 안에서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빠도, 아기도 힘드니까 말이야. 안 해보던 가사돌보며 육아에까지 매이면 기쁜 일도 짐이 되니까.”

영선씨는 이렇게 배려해 주는 시어머니가 고맙고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대신 필요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에게 여유가 생기지 않겠니. 그게 내 아들 손자 며느리 모두를 위한거니 부담 갖지 말아라.”

영선씨 어머니는 영선씨보다 앞서 바나나 어머니로 살아오신 거 같다.

영선씨는 20세가 되는 딸과 간간히 나누는 얘기가 있다.

“나중에 아기 맡길 생각은 하지 마. 한 두 시간은 괜찮지만 오래 맡기는 건 안돼.”

“아니 엄마, 애기들 좋아 하시잖아요.”

“내 양육 방식이 너희들과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너희도 아이를 직접 키워야 가정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으니까.”

영선씨는 딸에게 이렇게 말하는 한편 결혼 후 20년 이상을 가사 육아 공부 아르바이트로 바쁘게 살아와 이젠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었다. ‘이 공부만 마치면 여유있게 하고 싶은 일하며 살고 싶다. 여행도 다니고….’

영선씨에게는 벌써 바나나 어머니의 면모가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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