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세컨드 바이올리니스트’가 고백하는 ‘광인 곁에서 보낸 30년’

 

지난 11월 7일 서울 서초동 국제제자훈련원에서는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지난 30여 년간 고(故) 옥한흠 목사와 함께 제자훈련 사역을 계속해온 김명호 국제제자훈련원 대표의 출판기념회였다. 김 대표의 지인들과 사랑의교회 관계자, 칼(CAL)네트워크 핵심 관계자들만 참석한 자리였다.
이 자리는 김 대표에게 사뭇 의미 깊은 자리였다. 멘토이자 정신적 스승이었던 옥 목사님의 소천 2주기를 넘긴 지 두 달 남짓한 시점이었고, 본인으로서는 첫 책을 출간하는 자리였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소감을 술회하던 김 대표는 결국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그 눈물 속에는 탁월한 영적 지도자를 보필하며 한 세월을 통과해온 한 목회자의 기억과 회한과 추억과 그리움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김 대표는,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이지만 책의 모든 내용은 옥 목사님에 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20대 초반, 혈기방창하던 시절에 ‘강남은평교회(개척 초기 사랑의교회의 이름)’ 전도사로 들어와 30여 년을 옥 목사님과 제자훈련으로 나이 들어온 그로서는 사실 옥 목사님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그려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젊은 시절을 온통 점유하고 있는 옥 목사님은 이 책에서 ‘전설의 투구머리(젊은 시절 옥 목사님은 장발이었다)’로 등장해 가끔 청바지도 즐겨 입는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인다(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장면이다). 사랑의교회에서 시작된 제자훈련은 두란노서원에서 <평신도를 깨운다>가 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타게 된다. ‘도대체 그 제자훈련이란 게 뭐냐?’는 독자들의 빗발치는 문의에 사랑의교회는 세미나를 생각하게 되고, 이 세미나는 지금의 국제제자훈련원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시작된 옥 목사님과의 동역은 사랑의교회 칼세미나에서 미주 칼세미나로, 브라질 칼세미나로, 일본 칼세미나로 급속하게 성장해간다. 사랑의교회 자체의 볼륨이 커지고, 훈련원의 지경도 프랑스로까지 확대되지만, 그 이면에 ‘성장에 따른 피로감’ 역시 쌓여간다. 그 중 하나가 일본 칼세미나의 실패였고, 그 파장은 옥 목사님의 ‘쓰러짐’으로 연결된다.
이 사건 이후 김 대표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옥 목사님은 ‘제자훈련에 미친 열정적인 광인’에서 한결 부드럽고 깊어진 ‘은보(恩步, 은혜로운 발걸음이란 의미의 옥 목사님 호)’로 바뀌어간다. 첫 번째 ‘쓰러짐’에서 회복한 옥 목사님의 첫 번째 설교는 로마서강해였고, 연이은 두 번째 설교는 욥기강해였다. 고인의 정신적·영적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 번 꺾긴 옥 목사님의 건강은 끝끝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김 대표 또한 50이란 나이를 앞에 두고 ‘인생의 하프타임’을 무겁게 느끼게 된다.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김 대표는 안식년을 핑계로 미국 로스앤젤리스로 ‘도망’가게 되고, 그곳에서 옥 목사님의 입원소식을 듣게 된다.
이 책은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엮어지는 제1부에서 김 대표는 옥 목사님을 자신의 영적 스승이자 가장 절친한 친구로 묘사하며, 병상에 누워 있는 옥 목사님 앞에서는 50이 다 된 중년 남자의 서글픈 통곡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세컨드 바이올린’이라고 묘사하는 김 대표는 ‘수석 바이올린’이었던 옥 목사님이 한국 교회에 남긴 ‘뜻’을 ‘이어야 한다’는 결의로 책을 마무리하는 데, 특히 책의 말미에 나오는 옥 목사님의 탄식어린 고백, “내 목회는 실패한 것인가?”란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긴 세월을 늘 곁에서 지켜보며 동행했던 김 대표의 눈에 비친 옥 목사님의 모습과, ‘한 사람’과 ‘진국 설렁탕’으로 상징되는 옥 목사님의 목회철학, 그리고 ‘낡은 구두 한 켤레’로 표현되는 옥 목사님의 삶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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