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타임머신 같습니다. 손목시계는 자정을 가리키는데 도착한 곳은 자정 2시간 전이었고, 가을 옷차림으로 도착했는데 반팔 여름옷으로 갈아입어야 했고, 출발한 곳은 분명 2011년이었는데 도착한 곳은 1950년대 같았기 때문입니다. 캄보디아가 그러했습니다.
씨엠립 공항에 도착했을 때 환호와 박수소리가 들렸습니다. 손 글씨로 정성들여 쓴 ‘나눔선교회 환영’이라는 종이 현수막이 보입니다. 씨엠립의 선교사님과 현지 교회 청년들이 마련한 늦은 밤 환영 세레머니입니다. 떠남과 만남 사이에 깊은 정이 있었나 봅니다. 나눔선교회 선교사님과 현지 교우들과의 따뜻한 포옹과 맞잡은 손에서 그간 오고간 선교의 열심이 엿보였습니다.
그렇게 ‘나눔선교회 사랑의 우물 제200호 준공식’을 위한 캄보디아 선교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에 “오늘 하루, 남은 생의 첫 날”이라는 다짐으로 짧은 묵상을 마치고, 다섯 곳의 우물 기증 현장 방문을 위해 씨엠립 타팡 마을로 출발했습니다.


믿음의 역사

첫 번째 우물 현장 입구에 도착했을 때 현지인 한 분이 마중을 나와 계셨습니다. 타팡 마을 촌장님이십니다. 인사를 건네는데 촌장님이 제 손바닥에 ‘61’이라는 숫자를 써 보이셨습니다. 저도 손바닥에 숫자를 써서 보여 드렸지요. 당신의 나이가 61세라는 것입니다.
촌장님은 평생 폐질환을 앓으셨는데, 어느 날 나눔선교회의 우물을 우연찮게 기증 받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은 촌장님의 아픔이 마치 자신의 아픔처럼 여겨져 촌장님 몸에 손을 얹고 병이 떠나갈 것을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늘의 종이 울렸을까요? 촌장님의 병이 씻은 듯 나았답니다.
평생 불교를 신봉하며 살아오신 촌장님은 그 후로 기독교인이 되셨고, 자신의 땅을 선교회에 기증해서 그 자리에 예배당을 짓기로 하셨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참 아름답습니다. 할렐루야!
첫 번째 도착한 우물가에 한 여인이 예쁜 두 자녀와 함께 서 있습니다. 슬픈 소식입니다. 그 여인의 몸속에 손으로 느껴지는 종양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의견으로는 암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합니다. 캄보디아의 현실에서는 손 쓸 수 있는 병원도, 의사도 찾기 힘든 실정입니다. 설혹 병원이 있다 해도 수술비 마련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나눔선교회 대표 목사님은 통역자를 통해 그 여인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함께 간 다른 일행들과 함께 그 여인의 몸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 소리가 점점 높고 커졌습니다. 동행한 촌장님도 같은 마음으로 묵중히 서 계셨습니다. 몰려든 현지인들은 무슨 일인가 하여 멀뚱한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기도를 끝내고 한결 밝아진 여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눔선교회 대표 목사님은 그 여인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계속 믿음에 대해,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참으로 눈물 나는 광경이었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 신앙의 가장 거룩한 정점이 아닐까요? 애틋한 마음 끝내 외면하지 못해 계속 붙드시는 광경, 기적보다 크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이 엿보였습니다. 하나님은 나눔선교회 우물 사역을 통해 가난한 이와 소외된 이들로 하여금 하늘의 두레박을 내리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생명의 마중물

두 번째 기증된 우물이 있는 가정에 도착했을 때 저는 눈을 의심했습니다. 성인의 허리춤만큼 큰 항아리에 거품 띠를 띤 검초록 물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물 그릇 하나가 띄워져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이 설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가정에선 그 물로 밥 짓고, 마시며 살았다고…. 기겁할 노릇이었습니다. 차라리 빗물을 받아먹지….
그러나 가뭄이 생활 같은 나라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가난과 기후에 길들여지면 어쩔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캄보디아인의 평균 수명이 38세라는 이야기를 현지 선교사님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물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깨끗한 물은 바로 결신으로 이어집니다. 결신 가정은 현지 선교사님과 연결이 되어 계속 복음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제200호 사랑의 우물 준공식을 끝내고 유적지 앙코르와트와 킬링필드 그리고 보트피플을 둘러보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현지인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아이의 손을 빌어 구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희망’이란 단어를 모르는 캄보디아의 굵은 슬픔이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웅장한 유적지 앙코르와트보다 크메르루즈 정권에 의해 수천 명이 매몰된 킬링필드와, 광기어린 폴 포트에 의해 200만 명이 학살되었던 대참사의 역사를 차마 작은 가슴에 다 담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의 캄보디아는 마치 국가가 국민을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캄보디아를 가리고 있는 어둠의 손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끔히 걷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엔 동기가 없다지요. 마더 테레사의 기도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쓰실 때 우리와 의논하지 마시고 마음껏 당신의 일에 쓰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박보영
찬양사역자. ‘좋은날풍경’이란 노래마당을 펼치고 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콘서트라도 기꺼이 여는 그의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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