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국내 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들도 많아졌다.

그런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소식이 있다. 미국 대학에 유학 중인 우리나라 학생들 중 대학 과정을 마치는 학생은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유학생이 쓴 박사 학위 논문 내용이다. 왜 그럴까?

그는 여러 원인 중에서 이런 점을 찾아냈다. 미국의 대학 교실은 교수와 학생이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는데, 우리 유학생들이 거기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교수가 물어도 대답을 잘 하지 못하고, 교수에게 묻지도 않고 수업 시간에 구경만 하고 앉아 있으니 학습성과가 낮을 수밖에….

필자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반응이 없다’는 점이다. 학생들인지 영화 관람객인지 알 수가 없다. 왜 우리 아이들이 이처럼 ‘침묵 수업’을 좋아할까?

첫째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 때문이다. 학교로 향하는 아이에게 우리 부모들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와라”라고 하니 ‘잘 듣고’ 오는 것이다.

둘째는 학생이 질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놈의 입시 때문에 교사나 학생 모두 진도 나가기에 바쁘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 질문을 하면 교사도, 다른 학생도 좋아할 리가 없다.

셋째는 질문을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강의만 하고, 학생이 질문을 하면 핀잔을 주는 분위기에서, 대부분의 학생은 질문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 한다. 이들이 대학에 온다고 달라질 게 없다. 쌍방향 수업을 위해 교수들이 여러 방법을 써보지만, 학기말이 다 되어가도 학생들은 별로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대학도 교수는 강의를 하고 학생은 필기를 하는 일방적인 수업을 진행한다.

‘반응’할 줄 모르는 청소년들을 양성하는 우리 교육이 안타깝다. ‘반응’은 두 사람의 의사소통을 선순환으로 이어주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반응’을 안 하는 아이들은 그래서 학습효과가 낮다.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도 잘 못한다. 상대가 뭘 물어도 빤히 쳐다만 보고 있거나 아예 외면해버리는 사람, 잘못 된 지시를 확인해보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

무엇보다, 남으로부터 신세를 지거나 은혜를 입고도 고맙다고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뭐라고?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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