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함께 일했던 직장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요. 제가 본부장으로 일할 때 함께하던 청년이었습니다. 제가 떠날 때 막 결혼을 했는데 벌써 학부모가 되었다네요. 서점에서 제 책을 발견하고는 제 연락처를 알았다고 합니다. 네이버에서 이름을 치면 나올 텐데 말이죠.
책을 여러 권 펴내니 이젠 유명인사가 다 됐습니다. 그 대신 많은 사람들의 감시 속에서 살아야 하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때로는 짜증나는 전화도 많이 받지만, 이따금 이렇게 반가운 목소리도 듣곤 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우리도 옛날 함께했던 추억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느닷없이 ‘감’(甘) 생각이 난다네요. ‘감’이라…저도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저는 30여 명 되는 본부의 책임자였죠. 마침 추수감사절 주간이어서 어떻게든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술을 안 먹어서 인색하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가끔 간식 대접을 하곤 했죠. 고민을 하다가 ‘감’ 파티를 열기로 했습니다.

가까운 시장에 가서 맛이 잘 든 감 몇 상자를 샀습니다. 그러고는 봉지를 구해 감 네 개씩을 담아 나눠주었습니다. 모두들 봉투에 든 감 네 개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한 여직원이 퀴즈 문제 풀듯이 숨은 뜻을 해석해내더군요. ‘감 넷=감사’라는 걸요! 어쨌든 그때 그 일을 그 후배가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니 저의 선심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기 안주에 술 사주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하는 마음이란 마음에 새겨둔 기억을 말한다.”
J. B. 마슈의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베푼 고마운 일은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서 받은 은혜는 왜 그리 쉽게 잊혀지는지요? 그게 심해지면 이런 말을 듣습니다. “배은망덕”(背恩忘德).
감사는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이의용
<내 인생을 바꾸는 감사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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