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꽃처럼 새처럼 바람처럼 삶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가수보다 억척스럽게 아픔과 싸우는 그들이 더 아름다운 걸 알기 때문입니다. 삶 전체로 무대를 이룬 그분들 앞에서 저의 무대는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시외버스를 타서 만추의 경춘가도를 지나 다시 마중 나온 차를 타고 첩첩산중 굽은 산길을 넘어 도착한 곳은 어느 요양병원이었습니다. 환우들을 위한 희망 콘서트를 위하여 도착한 이곳은, 말기 암 환우들이 마지막 요양을 하는 곳입니다.
병원을 둘러보며 절망이 사람의 얼굴을 둘로 나누는 것을 봅니다. 하늘을 향한 얼굴과 땅을 향한 얼굴입니다. 역시나 문제는 ‘마음’이구나 싶습니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뜨고, 산책길을 나섭니다. 산책길에 만난 친구들이 모두들 한 마디씩 건넵니다. 병풍처럼 드리운 사방의 산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산처럼 우리를 감싼다 합니다. 자유로이 부는 바람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 영혼은 늘 자유롭다 말합니다. 온 생을 다하여 피워낸 꽃은 그렇게 생을 다하여 살아가자 권고합니다.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할 때 환우들이 강당을 메웁니다. 어느 새 저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노래도 조심스러워지고 말도 조심스러워집니다. 함부로 무엇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별처럼 꽃처럼 새처럼 바람처럼 삶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가수보다 억척스럽게 아픔과 싸우는 그들이 더 아름다운 걸 알기 때문입니다. 삶 전체로 무대를 이룬 그분들 앞에서 저의 무대는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모든 공연 준비가 끝나자 무대는 정적이 흐릅니다. 첫 곡은 트럼펫 연주입니다. “You raise me up”입니다. 마지막 노랫말 때문에 고른 곡입니다.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l can be.
당신이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두 번째 곡은 ‘거위의 꿈’입니다.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날을 위해.
그래요 난, 난 꿈을 믿어요.
저 차갑게 서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저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그리고 한 편의 시를 나눕니다. 이생진 님의 “벌레 먹은 나뭇잎”입니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공연이 끝나고 환히 웃으시는 환우들의 얼굴이 갓 피어난 꽃보다 더욱 아름답습니다. 즐거워 웃는 얼굴보다 역경을 이겨내며 웃는 얼굴이 세상에 더 큰 희망을 안겨 준다는 걸,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 걸, 그분들의 얼굴에서 확인합니다.
도종환 님이 “암병동”이란 시에서 그랬습니다.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다고.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믿음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온 세상이 암울한 어둠뿐일 때도
우리들은 온몸 던져 싸우거늘
희망이 있는 싸움은 진실로 행복하여라

참답게 산다는 것은
참답게 싸운다는 것
싸운다는 것은 지킨다는 것
빼앗기지 않고 되찾겠다는 것
생명과 양심과 믿음을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고
정의와 자유와 진실을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니

(…)

희망을 가진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앞길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일 때도
우리들은 암흑과 싸우거늘
빛이 보이는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새벽을 믿는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다음 날 아침. 짐을 꾸려 내려오는 길 산언저리 저만치에 한 무더기 억새가 한들거리며 말합니다.
“우리도 꽃이에요.”
그렇지요. 지상에 천상의 꽃 아닌 사람이 어디 있나요. 다만 꽃처럼 살지 않는 꽃이 있을 뿐이지요. 지금이 바로, 꽃 시절입니다. 훗날 천상에서 지상에서의 삶을 그릴 때, 한 송이 들꽃 같은 하얀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싶습니다.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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