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나 <네 약함을 내세워라>

▶이 책은 중국 고전을 통해 삶의 지혜를 끌어내는 작가 마수취안이 썼으며, 김영사에서 펴냈다.

실제로 인간이란 알고 보면 모두가 나약하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겸손히 하늘의 도움을 구하고자 할 때 그는 어떤 존재보다 강해진다. 하늘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끌어들이는 지혜인 셈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명확한 처세술은 어찌 보면 없지 싶다.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는 강자와 약자가 나뉜다. 약자는 늘 강자의 ‘밥’이 되는 약육강식의 룰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영원한 약자도 없고 영원한 강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중국 서진 초기의 명신 두예는 ‘수약’(守弱) 곧 약세를 지키는 데 대한 글을 썼다. 그는 수약이 스스로를 보존하고 출세의 기반을 닦는 비밀 무기였다. 그는 “약함의 장점은 많으나 사람들이 중시하지 않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약함의 처세이다. 세상의 수많은 약자들을 위한 처세술을 말한 셈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자의 처세를 폄으로써 성공하고자 한다. 부자인 양 허세를 부리고, 지식이 풍부한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관용하고 너그러운 양 위장한다. 자신에게 일을 맡기면 탁월한 결과를 가져올 것처럼 포장한다.
결과는? 허망하다.
마수취안은 그의 책 <네 약함을 내세우라>(김영사 펴냄)에서 그 실례들을 나열한다.

 

명나라의 환관 조길상은 큰 공을 세우고 큰 권력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통해 권력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런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였다.
“난 나라에 큰 공을 세웠고 황제 폐하의 신뢰와 대신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데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한 지혜로운 손님이 말했다.
“그것이 바로 나리의 우환입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데 무슨 우환이란 말인가?”
“자고로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적당한 신분과 어울렸습니다. 그렇지 않고 신분과 어울리지 않게 권세를 부린 자는 남들의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나리께서 지금 큰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환관 출신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단 황제의 총애를 잃게 되면 나라의 권세도 연기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우려하는 바입니다.”

조길상은 그러나 이 말을 선배의 일개 소견으로 치부하였고 권력을 휘둘렀으며 그를 해하고자 하는 자들을 왕의 권력에 힘입어 제거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이 강해질수록 군신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하였으며 마침내 황제는 그를 멀리하게 되었으며, 이런 황제를 향해 오히려 모반을 준비한 조길상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어울리지 않는 ‘강함’은 결국 자신을 해롭게 할 뿐이었다.
이러고 보면 ‘수약’의 도리는 곧 자신의 처지를 바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마수취안은 약함이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장 부끄러운 것은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강자에게 힘으로 대항하려다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배척당하고 마는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정치인들도 그리하였고, 연예인들도 그리하였으며, 기업가도 그리하였다.

그러니 자신의 근본을 굳게 지킬 일이다. 마수취안의 말이다.
“약자에게 결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약자에게도 많은 장점이 있다. 약자의 선량함, 인내심, 양보심, 관용, 성실함이야말로 성공을 위한 고귀한 자산이다. 이를 굳게 지킬 수만 있다면 약자에게도 희망이 있다. 우열의 형세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가난함, 부족함, 비천함 등이 오히려 약자에게 역동성을 부여해오지 않았는가. 그 약함을 잘 이용한다면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약세를 우세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연약하고 부드러움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제압해 온 사례를 우리는 또 많이 보아왔다.
마수취안은 명 제상 위성자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왕이 위성자에게 현자를 추천하라고 하자 그는 자기보다 더 학식이 있는 사람 셋을 추천한다. 그러자 왕이 놀라면서 물었다.
“자네보다도 더 깊은 식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위성자는 대답했다.
“소신은 자하와 견줄 수 없습니다. 주공께서도 자하를 만나면 소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왕은 위성자가 추천한 세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극이란 사람은 이를 보면서 크게 탄복하여 위성자를 더욱 공경했다.
왕이 위성자를 재상으로 삼으려고 할 때 이에 반대하는 적황이란 신하에게 “폐하께서 위성자를 재상으로 선발할 것 같으니, 자네는 더 이상 욕심내지 말게” 하고 단속을 하였다. 그러자 적황은 매우 불만을 품고 큰소리를 쳤다.

“내가 위성자보다 뭐가 못한가? 업읍을 잘 다스려서 공을 세운 서문표도 내가 추천했고, 중산국을 공격했던 낙양도 내가 추천한 사람이 아닌가? 게다가 자네를 중산국에 남긴 것도 나의 뜻이었지. 그리고 내가 굴후부를 주공 아들의 스승으로 추천했네. 이 모두 내가 세운 공로가 아닌가?”

그러자 이극이 웃으며 “자넨 나를 포함해 모두 자네보다 못한 사람을 추천했네. 하지만 주공께선 위성자가 추천한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지만, 자네가 추천한 사람은 신하로 삼고 있지 않은가? 이 일만으로도 자네가 위성자를 따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네”라고 했다.
위성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오히려 강함의 근원으로 삼을 줄 안 사람이었다.

성경에서도 약함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순간, 하늘의 힘이 그 다음을 이어주었던 이야기들이 성경의 공통 코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부득불 자신의 나약함을 자랑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 것을 본다.
실제로 인간이란 알고 보면 모두가 나약하다. 하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겸손히 하늘의 도움을 구하고자 할 때 그는 어떤 존재보다 강해진다. 하늘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끌어들이는 지혜인 셈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명확한 처세술은 어찌 보면 없지 싶다.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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