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 | 톰 라이트 지음, IVP 펴냄

2001년 9월 11일, 세계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경악한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는 비행기의 모습은 다시 한번 ‘악’의 문제에 관해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9/11 사건은 사건을 보는 입장에 따라 조금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재난 혹은 악에 관한 문제이다. 쓰나미, 대지진을 비롯, 최근 계속되고 있는 자연재해도 결국은 악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즉, 하나님은 왜 이런 재난(악)을 허용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같은 의문은 사실 최근의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다시 환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 말미에 실린 역자 후기에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현대인들에게는 이미 잊혀진 사건이 되었지만, 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강타했던 지진은 서구 유럽의 지성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조용하던 주일 아침에 갑자기 닥쳐온 지진이 사람들이 모여 주일 예배를 드리던 리스본 시의 건물들 거의 전부를 무너뜨렸고, 당시 그 도시의 30만 인구 중 3분의 1에 가까운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로 하여금 의로우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악을 허용하실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당시의 볼테르, 칸트, 루소, 헤겔 등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사상도 중요한 부분에서 이 리스본 지진 사건에 대한 지적 응답의 결과로 나타나 것이라고 한다.’

이 어려운 질문을 영국 성공회 주교이자 신약학자이고 역사가인 톰 라이트는 다시 한번 제기한다. 이 책에서 그는 “아우슈비츠가 지난 세대에 적어도 그것에 대해 깊이 숙고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한쪽에서 9/11 사건이, 또 다른 쪽에서 인도양의 쓰나미와 미국의 멕시코만 연안을 강타한 허리케인 같은 ‘자연적인’ 재앙들이, 악이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당신의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당신이 그리스도인이든 무신론자든 다른 무엇이든), 그리고 특히 악에 대해 우리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둘러싼 새로운 토론의 물결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악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신학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삶에서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악에 관한 문제가 이성을 중심으로 한 끝없는 진보에 대한 믿음 때문에 다음과 같은 세가지 태도를 만들어냈다고 본다. 첫째, 우리는 악이 우리를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면 악을 무시한다. 둘째, 우리는 악이 그런 식으로 정면에 등장할 때 깜짝 놀란다. 셋째, 결과적으로 우리는 미숙하고 위험한 방식으로 악에 반응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악에 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헤치지는 않지만(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악이 현실적인 문제이며 우리가 이 악이란 문제에 대해 늘 미숙하게 대처한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악의 문제는 결국 십자가를 통할 때 비로소 궁극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악이 궁극적으로 극복될 것이며,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혜택을 입게 될 것이고, 이 우주의 드라마가 결국 온 피조세계의 부활이라는 장엄한 대단원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저자는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성취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 세계를 앞당겨 실현하는 것”이라며 악에 관한 길지 않지만 심도 깊은 논의의 결말을 맺는다.

김지홍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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