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시내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 버스비가 모자라 완행기차를 탔답니다. 차 안에서 한 아주머니가 자리를 내주면서 앉으라고 권하는데 사양하다가 결국 앉았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혹시 교회 나가시는 분입니까?” 물었더니 “어떻게 아셨어요?” 하며 묻지도 않았는데 아주머니가 교회 나온 이야기를 해주더랍니다.
이야기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바쁘게 집안일을 하는데 거지가 구걸을 왔답니다.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던 아주머니는 귀찮아서 퉁명스럽게 “지금 바빠요, 다른 데나 가보세요” 하며 박대했답니다. 그런데 뒤돌아 나가는 그 거지의 뒷모습이 영락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갔지만 거지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답니다. 혹 다른 집에 있을까 해서 옆집들을 샅샅이 살폈지만 허사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주저앉아 통곡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 눈에는 낯선 사람도 예수님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십 년 가까이 만나는 사람을 예수님으로 알고 대접하며 살았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면서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세상 사람이 다 예수님으로 보이니까 참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싶어요.”

고난주간, 그리고 돌아올 부활절을 맞으며 문득 권정생 선생님의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욕하고 침 뱉던 2000년 전 예루살렘 사람들을 그저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까닭은 제 속에도 그렇게 어둡고 악한 무지함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선생님 이야기 속의 그 아주머니를 떠올리면 내 앞에 있는 누구든 그에게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삶이라면 여전히 지금도 2000년 전의 그 비극은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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